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란하마 Jun 06. 2022

영화 <밤에 우리 영혼은>을 보고

- 외로운 밤들이여, 이제 안녕!

 


 하루하루 낡은 벽지처럼 늙어가는 루이스(로버트 레드포드)의 일과는 일기예보를 듣는 것과 낱말 퍼즐 맞추는 게 전부입니다. 가끔은 동네 커피숍에서 동네 노인들과 잡담을 나누기도 하죠. 그러던 어느 날, 한동네에 사는 애드(제인 폰다)로부터 꿈에도 생각지 못한 제의를 받습니다.

  “괜찮으시면 언제 제 집에 오셔서 같이 주무실래요? 난 외롭거든요. 당신도 그럴 것 같은데. 섹스를 하자는 게 아니에요. 그쪽으로는 흥미를 잃은 지 이미 오래됐어요. 밤을 견뎌보려고 그래요. 그냥…… 침대에 누워서 잠들 때까지 얘기하면서 밤을 보내자는 거죠. 밤은 정말 끔찍하지 않아요?”

  루이스는 생각해 보겠다고 하고, 결국 다음 날 밤에 애드의 집을 찾아갑니다. 양치질을 하고, 옷을 골라 입은 뒤 애드 집의 뒷문으로 가서 문을 두드립니다.

  “왜 뒷문으로 와요?”

  “좀 그렇잖아요. 사람들이 수군댈 테니까.”   

  한 동네에서 오랫동안 살았지만 거의 교류가 없었던 두 노인네가 한집에서 함께 밤을 보내는 그야말로 굉장히 어색하고, 이상한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런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려고 애드는 루이스에게 와인을 권하죠. 루이스는 맥주는 없냐고 되묻습니다. 애드는 다음에는 맥주를 준비해 두겠다고 말하죠. 그리고 애드가 루이스에게 말합니다.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세요.”

  “날씨가 좀 쌀쌀하지 않아요?”

  “이러기예요? 날씨 얘길 해야 돼요?”

  “무슨 얘기 하면 좋겠어요?”

  “날씨 빼고 다요.”

  애드는 루이스에게 집안을 구경시켜줍니다. 그리고 함께 침대에 눕게 되죠. 애드가 침대에 누우며 루이스에게 말합니다.

  “이거 사실 굉장히 이상한 상황이잖아요.”

  “잘하는 짓이 아닌 거 같아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죠.”

  “맞아요. 아닐 수도 있죠.”

  루이스가 이번에는 애드에게 묻습니다.

  “또 무슨 생각했는지 알아요?”

  애드는 답이 없습니다.

  “자요?”

  애드는 여전히 답이 없고, 새근새근 코를 고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렇게 첫날밤을 별일 없이 지내고, 아침에 루이스는 집을 나서죠. 애드는 이층 창가에서 루이스를 말없이 바라봅니다.



  두 번째로 루이스가 에디의 집을 찾아옵니다. 여전히 뒷문으로 슬쩍 들어갑니다. 첫날에는 없었던 맥주가 냉장고 안에 준비돼 있습니다. 루이스에 대한 배려였던 거죠. 루이스가 애드에게 묻습니다.

  “왜 나였나요?”

  “대충 골라잡았을 것 같아요?”

  “그냥 궁금해서 그래요.”

  “대화 상대로 좋을 것 같았거든요. 제리 핸더슨보다 훨씬 잘 생기기도 했고요.”      

  루이스가 웃습니다. 애드가 이어 말합니다.

  “진짜 이유가 뭔지 알아요? 난 늘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요?”

  “생각을 해 봤을지 모르겠지만 날 어떻게 생각했어요?”

  “생각해봤죠. 주관이 확실하고 품위 있는 사람 같더군요.”

  애드는 루이스에게 다음번에는 뒷문이 아니라 현관으로 들어오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수군댈 텐데요.”

  “수군대라죠. 난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하면서 평생 살았어요.”

  루이스가 세 번째도 뒷문으로 와서 노크를 하지만 애드는 문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결국 루이스는 현관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죠. 그때 옆집에 사는 이웃이 루이스를 보게 되고, 이내 동네에 소문이 퍼지게 됩니다. 루이스가 커피숍에 갔을 때 동네 노인네들이 한 마디씩 비꼬기 시작합니다.

  “요즘 바쁘다며?”

  “허리는 어때?”

  “힘이 대단해. 우리도 자네처럼 힘이 넘치면 좋을 텐데.”

  루이스는 별다른 해명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숍을 나가버립니다.

 그 뒤 루이스가 애드의 집에 갔을 때 식탁에 촛불이 켜져 있고, 멋진 저녁이 차려져 있습니다. 루이스는 애드에게 커피숍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해줍니다. 그리고 애드에게 시내에 함께 외출하자는 제의를 합니다. 휴일에 화려한 옷을 입은 애드는 레스토랑에서 루이스와 식사를 하고, 데이트를 즐깁니다. 거리를 걸을 때 애드는 루이스와 팔짱을 끼고 걷습니다. 이웃들로부터 당연히 시선도 받게 되죠. 애드와 루이스의 관계가 좋아져 즐거운 시간을 보낼 즈음, 뜻하지 않은 일이 생기게 됩니다. 애드의 아들 진이 손자인 제이미를 데려와 아이를 봐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진의 아내가 집을 나가버려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었던 거죠. 맡길 데가 어머니밖에 없었죠. 손자가 집에 와 있으니 루이스가 찾아가기는 좀 그랬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애드의 손자 제이미와 루이스의 관계가 좋습니다. 애정 결핍에 스마트폰 게임에만 빠져 있던 제이미를 소프트볼 구장에 데려가서 게임을 함께 봅니다. 그리고 루이스는 자신의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가지고 놀던 기차놀이 장난감을 주게 되죠. 레일을 깔고, 기차놀이를 함께 하고, 제이미는 기차놀이 장난감 놀이에 푹 빠집니다. 제이미가 애드에게 루이스를 데려와 집에서 같이 자도 되냐고 물을 정도 가까워지죠. 한 침대에서 셋이 잠을 자기도 합니다. 루이스는 애드에게 제이미가 친구가 없기 때문에 외로울 거라고 하며, 친구를 만들어주자고 제의를 합니다. 그리고 유기견 센터에 가서 제이미가 마음에 드는 개를 집으로 데려옵니다. 셋이 야외 캠핑을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죠. 그렇게 완벽한 가족이 되어 가는가 싶었는데, 진이 집으로 찾아와 애드가 루이스와 가깝게 지낸다는 사실을 알고 화를 냅니다. 애드가 루이스를 싫어하는 건 루이스의 과거 때문이었습니다. 루이스는 젊은 시절에 외도를 해 동네에서는 평판이 좋지 않았습니다. 결국 진은 애드한테서 떠나기 싫어하는 제이미를 강제로 데려갑니다.   



  루이스는 특별한 계획을 세워 애드와 함께 여행을 떠납니다. 시골구석 동네에서 벗어나 덴버 시에 있는 브라운 펠리스 호텔에 묵고, 둘은 신혼여행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애드가 루이스에게 처음으로 자신의 속살을 보여주기도 하죠. 둘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 애드는 차 안에서 머리를 루이스의 어깨에 살포시 기댑니다. 둘의 관계가 이젠 행복으로 이어지는가 싶었는데 제이미 문제 때문에 애드는 진한테 가게 됩니다. 진의 아내는 집을 나간 지 이미 오래되었고, 집안은 엉망입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진은 애드와 루이스가 집에 와 있는 걸 알고 짜증을 냅니다. 그리고 애드한테 오래전부터 속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털어놓죠. 진이 어렸을 때 누나였던 코니가 교통사고로 죽은 이후로 변해버린 애드의 태도에서 받았던 상처가 있었던 겁니다. 딸 코니가 교통사고로 죽은 뒤, 애드는 삶의 모든 걸  다 잃어버리고 세상과도 벽을 쌓고 살았거든요.

  결국 애드는 살던 집을 팔고 아들 진과 손자인 제이미와 함께 살기 위해 떠나게 되고, 루이스와도 헤어지게 됩니다. 루이스는 자신도 함께 가서 옆에서 도와주고 싶다고 말하지만 애드는 가족의 문제라며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그렇게 헤어지고 난 뒤, 루이스는 애드한테 제이미가 가지고 놀던 기차놀이 장난감과 스마트폰을 택배로 보내줍니다. 그리고 애드와 루이스는 전화로 새로운 대화를 시작하게 됩니다.

  “밤은 정말 끔찍하지 않아요?”

  “그래요.”

  “무슨 얘기 하고 싶어요?”

  “모든 거 다요. 날씨도요.”



 몇 가지 눈에 띄는 점

 1. <밤에 우리 영혼은>은 리테쉬 바트라 감독이 연출했습니다. 리테쉬 바트라 감독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연출한 감독으로 우리에게 낯이 익은 영화감독이죠. 에디 역을 맡은 제인 폰다는 핸리 폰다의 딸이고,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작품상 발표자로 등장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호명하기도 했죠. 루이스 역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는 로버트 레드포드가 맡았습니다. 제인 폰다와 로버트 레드포드의 과장되지 않은 담담한 연기가 감동의 깊이를 더해줍니다. 별다른 서사 없이도 소구력이 있는 건 두 배우의 힘이라고 할 수 있겠죠.    

 2. 늙어가는 건 외로움을 쌓고, 그걸 견뎌내는 일입니다. 함께 사는 부부라도 외로움을 나누는 건 쉽지 않죠.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나눌 수 있다면 그건 커다란 행운입니다. 애드와 루이스는 그런 행운을 만난 거죠. 아니 행운을 만든 겁니다.

 3. 영화에 일기예보가 반복적으로 흘러나옵니다. 나이가 들면 관심을 갖는 건 일기예보입니다. 아니 일기예보밖에 남은 게 없는 거죠. 쉬르리얼리즘 소설이나 이기적 유전자, 혹은 야동이나 가상화폐 같은 것들은 이미 관심사에서 멀어졌죠. 일기예보가 하루의 주된 관심사가 된다는 건 참 쓸쓸하고도 서글픈 일입니다. 그런데 애드와 루이스는 날씨 이야기마저도 새롭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아니었죠. “무슨 얘기 하면 좋겠어요?” “날씨 빼고 다요.” 이랬던 그들이 나중에는 “무슨 얘기 하고 싶어요?” “모든 거 다요. 날씨도요.” 이렇게 변합니다. 그건 시간 속에서 신뢰와 감정이 배양됐기 때문에 가능해진 거죠.

 4. 애드가 루이스에게 48년을 살아온 집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는데 대사 한 마디가 큰 울림을 줍니다. 2층 침실을 가리키며 “우리는 늘 여기서 잤어요.”라고 말을 하고 난 뒤 이내 “우리라고 해서 미안해요.”라고 말하죠. ‘우리’라는 말이 혹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을까 하는 배려 같은 거였죠. 사랑은 배려하고 강요하지 않는다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5. 루이스가 젊은 시절 외도를 했던 과거를 이야기하는 장면도 인상적입니다.

  “태머라와 태머라 딸과 같이 저녁을 먹는데 갑자기 나 자신이 역겨워지더군요. 이런 생각이 들었죠.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내가 태머라 딸의 아빠 노릇을 하는 지금.’ ‘정작 내 딸은 아빠 없이 자라고 있잖아.’ 그날 밤이 또렷이 기억나요.”

  욕망이 끓어오를 때는 물불을 가리지 않죠. 하지만 육체적인 관계로 수렴이 되고 난 뒤에 몰려오는 공허감은 끔찍합니다. 모든 걸 다 모른 척할 수 있어도 스스로 갖게 되는 자기 모멸감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게 인간입니다.

  6. 콜로라도 공원으로 캠핑 갔을 때, 장작불 옆에서 애드와 루이스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도 인상적입니다. 캄캄한 밤에 장작불이 타오르는 걸 멀리서 롱숏으로 찍었습니다. 두 영혼만이 시들지 않고, 살아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7. 애드는 딸 코니를 잃은 상처가 있고, 루이스는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그걸 이루지 못한 아쉬움이 있죠. 그런 두 사람이 뒤늦게 만나 새로운 인생을 꿈꾸게 됩니다. 애드는 아들 진과 화해를 하려고 노력 중이고, 루이스는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뜻하지 않은 사람을 만나서 관계를 회복하고, 따뜻한 영혼을 되찾는 건 정말 아름다운 인생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봄날은 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