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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하마 Jul 12. 2022

영화 <Silence>

-신을 만나는 시간

      


  영화 <Silence>는 일본 작가 엔도 슈사쿠의 <침묵>이 원작이고,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연출했습니다. 각색은 <갱스 어브 뉴욕>과 <순수의 시대>를 쓴 제이 콕스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함께 작업했으며, 캐스팅을 보면 배우들의 이름이 시선을 확 끕니다. 앤드류 가필드(로드리게스 역)와 아담 드라이버(가루페 역), 리암 니슨(페레이라 역), 그리고 고마츠 나나(모니카 역)가 출연합니다. 고마츠 나나는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나다>로 한국에서도 적지 않은 팬이 생겼죠. 배우들의 이름만으로도 묵직한 중력감이 느껴집니다.  

  영화 <Silence>는 마음으로 보는 영화입니다. 감각적인 눈으로 보면 금세 졸음이 쏟아지고, 지루할 뿐입니다. 2시간 41분이 지겨운 설교 같은 고문을 받게 되죠. 신앙이 1도 없는 사람이 채플 수업을 받는다고 생각해보세요.

  <Silence>는 17세기 에도 시대를 역사적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선교를 위해서 일본으로 파견되었던 페레이라 신부(리암 리슨)가 배교를 하고 사와노 추안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하고 산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신앙의 스승으로 여기고 있었던 로드리게스 신부(앤드류 가필드)와 가루페 신부(아담 드라이버)는 페레이라 신부가 신을 공개 모독하고, 신앙을 저버린 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폄훼하려는 모략이라고 하죠. 만약 사실이라면 그것을 를 확인하기 위해 일본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목숨을 걸고 일본으로 떠나게 됩니다.



  지방 수령인 이노우에는 독특한 방식으로 배교를 강요합니다. 키리시탄(크리스천)에게 바닥에 놓인 그리스도의 성화를 발로 밟게 하는 거죠. 이 전통을 에부미(絵踏み)라고 합니다. 배교를 하지 않으면 펄펄 끓는 온천의 유황수를 몸에 들이붓고, 십자가에 매달아 해변에 세워 들이치는 바닷물에 죽게 합니다. 관가에서는 키리스탄과 신부를 찾느라 혈안이 되고, 현상금까지 걸게 됩니다.

  로드리게스와 가루페는 일본의 신자들에게 도움을 받아 신앙을 전파하지만 결국 가루폐는 죽음을 맞고, 로드리게스는 체포당하게 됩니다. 체포를 당한 로드리게스는 결국 신앙의 스승이었던 페레이라도 만나게 되죠.

  <Silence>에서 인물 간의 팽팽한 긴장이 노정되는 절정은 로드리게스와 페레이라가 만나는 장면입니다. 지방 수령인 이노우에는 로드리게스를 배교시키기 위해 잔인한 방법을 동원하죠. 키리스탄 다섯 명을 나무기둥에 거꾸로 매달에 놓고, 그들을 살려주는 조건으로 로드리게스의 배교를 요구합니다. 나무기둥에 매달린 키리스탄들은 귀밑에 상처를 내서 피가 서서히 빠져나가게 해 놓았기에 기절하지도 않고, 쉽게 죽지도 않습니다. 고통만 있을 뿐이죠.

  페레이라는 로드리게스에게 키리스탄을 살릴 수 있는 건 배교뿐이라고 설득하기 시작합니다. 두 인물의 대화는 팽팽한 긴장을 이루며, 참된 신앙이 무엇인가를 성찰하게 합니다.           

  “저들을 위해 뭘 해줄 것인가? 기도? 그럼 뭐가 돌아오나? 고통만 더할 뿐이지. 그 고통은 신이 아니라 자네만 끝낼 수 있어.”

  “제발 나가세요!”

  “나도 기도했었지만 도움이 되지 않았네. 해보게. 기도해봐. 허나 눈을 크게 뜨고 하게. 자넨 저들을 살릴 수 있어. 자네가 신을 부르듯 도움이 청하고 있잖나. 신이 침묵한다고 자네까지는 그럴 필요는 없어.”

  “저 사람들이 배교를 하면 돼요. 배교하세요! 하나님 도와주소서! 배교하세요! 코로부! 코로부!”

  “자네가 배교하지 않으면 구할 방법이 없어. 신부는 그리스도처럼 행동해야 하네. 그리스도께서 여기 계셨다면 저들을 구하려고 배교하셨을 걸세.”

  “여기와 계세요. 제가 못 들을 뿐이지,”

  “하나님께 사랑의 증거를 보여주게. 그분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구해 주게! 교회의 판단보다 훨씬 중요한 게 있네. 자네가 해야 할 일은 이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사랑의 실천이야.”          

  로드리게스에게 배교는 그저 하나의 형식일 뿐이라고 지방 수령 이노우에와 통역관은 집요하게 설득합니다. 로드리게스도 성화 앞에서 배교를 고민하게 됩니다. 그 순간 내내 침묵하고 있었던 신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어서 하거라. 괜찮다. 나를 밟아라. 네 고통을 아노라. 인간의 고통을 나누고자 이 땅에 태어났고, 너의 고통을 위해 이 십자가를 지었다. 이제 네 생명은 나와 함께 있다. 밟아라.”



  결국 로드리게스는 배교를 하게 되고, 그의 스승인 페레이라가 그랬듯이 그도 일본 여자를 아내로 맞고, 오카다 산에몬이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개명합니다.

  로드리게스와 가루페를 일본까지 안내해주고, 마을의 키리스탄과 연결까지 시켜줬지만 나약한 마음과 신앙으로 몇 번씩 배교를 한 이치지로가 로드리게스에게 고해성사를 하려 합니다. 로드리게스는 자신은 이미 배교한 신부라고 고해성사를 받지 않으려고 하죠. 이치지로는 가족과 신부와 주님을 배신해 너무 고통스럽다며 고해를 받아달라고 애원합니다. 로드리게스는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그때 다시 신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주님, 저는 당신의 침묵과 싸웠습니다.”

  “나도 네 곁에서 괴로워했으며 침묵한 적이 없노라.”

  “압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제 평생 침묵하셨더라도 오늘까지 제가 해왔던 모든 일들이 당신의 존재를 증명합니다. 그 침묵 속에서 당신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일본인으로 살던 로드리게스는 이노우에의 요구에 따라 몇 번씩 배교했고, 그렇게 삶을 마치게 됩니다. 불교식으로 장례까지 치르게 되죠. 관 속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그의 손에 조그만 나무 십자가 하나가 들려 있을 뿐이죠.

  오직 진실은 하나님만이 아실 것이다!          



  영화를 본 뒤 마음에 남은 것들

  첫째, 타이틀이 뜨면 온갖 소리가 들립니다. 새소리, 벌레소리, 바람소리, 파도소리가 뒤섞여 들리다가 화면에 ‘Silence’ 자막이 뜨면 조용합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죠. 침묵의 시작입니다. 아니 침묵의 스토리가 펼쳐집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다시 새소리, 벌레소리, 바람소리, 파도소리가 뒤섞인 소리들이 울려 퍼집니다. 온갖 소리들은 우리가 사는 시대의 소음으로 치환되고, 그런 소음 속에서는 신의 침묵의 소리를 듣는 건 불가능한 일이겠죠. 신과 통화할 수 있는 다이얼은 기도와 성찰뿐입니다.

  둘째, 그 흔한 OST조차 없습니다. 생생한 배경 속에서 인물과 인물이 만나고, 거기서 사건이 펼쳐질 뿐입니다. 침묵에 조응하는 사운드이고, 침묵의 상징성이 형식으로도 그렇게 표현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셋째, 원작에 충실한 서사는 사실적인 장면으로 인해 훨씬 더 감득이 됩니다. 키리스탄에 대한 고문과 서양 사상을 대하는 일본인들의 독특한 방식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넷째, 로드리게스 신부 역할을 한 앤드류 가필드의 연기를 보면서 탈각을 하는 것처럼 배우로서 내면의식까지 성숙돼 가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전반부에는 이야기에 녹아들지 않는 표정이었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그런 생각은 어느새 사라지고, 완전 몰입이 됐습니다. 어쩌면 로드리게스 신부가 육화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리암 니슨이 36년 전, 새파랗게 젊은 시절 롤랑 조페 감독의 <미션>에 사제로 출연한 것과 비교해 보니 그야말로 격세지감이 따로 없습니다. 연기자의 얼굴은 시대가 축적돼 있는 살아있는 화석입니다.

  다섯째, 로드리게스가 페레이라에게 묻는 말이 있습니다.

  “행복하십니까?”

  “뭐, 그저 그렇지.”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 장면이고, 대사입니다. 사는 게 다 그렇죠. 그 말 만큼 인생철학이 녹아든 대사도 없습니다.

  여섯째, 조연이긴 하지만 기치지로라는 인물이 갖는 의미가 적지 않습니다. 믿는 자라 할지라도 신에 대한 갈등과 끊임없는 질문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회의와 불신으로부터 시작해 믿음의 깨달음에 이르는 통과제의를 통해 신과 만나게 되는 거죠. 기치지로는 바로 그런 과정을 보여주는 인물이고, 관객은 그 인물에 동화됩니다. 기치지로의 신앙은 관객의 믿음과 등가를 이루기도 합니다. 기치지로가 미우면서도 애정이 가는 건 관객 자신의 믿음으로 환원되기 때문입니다.       

  여섯째,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 된다면 그 영광의 대가 또한 신자들의 고통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고통의 순간에 정말 신은 어디에 있었던 걸까요? 신이 인간을 대하는 방법은 침묵일 수밖에 없는 건가요?

  영화는 끝났어도 그 질문은 계속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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