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ious, 여유로운
라틴어 Spatium은 "여유, 간격"이라는 뜻이야.
공간으로 여유로 생각해 보면 space는 "장소"라는 뜻부터 시작해서 "넓은 우주"라는 의미를 가지게 되지.
spatium은 시간과 감정의 여유도 아우르는 말이었대. 그래서 spacious "여유로운"은 공간이 널찍한 것뿐만 아니라 함께 즐길 시간이 있고, 마음에 공감할 여유가 있는 걸 의미해.
ㅇㅇ 이모의 아가가 50일이 되어서 스튜디오에 가서 촬영을 하고 왔다는 카톡을 받았어. 벌써?
내가 너를 낳고 네가 50일이 되기까지는 걸린 시간을 느낌으로 말하자면, 어떤 선녀가 백 년에 한 번 바위 위에 내려와서 그 위를 돌아다니면서 옷자락으로 바위를 쓸어 닳아 없애는 시간 정도야. 뭔 소리냐고? 엄청 오래 걸린다는 말이야. 옷으로 바위를 닳아 없애게 할 만큼이라면 말도 안 되게 오래 걸린다는 거지. 나에게 첫 50일이 그렇게 오래 걸렸거든. 그런데 ㅇㅇ 이모네 아가가 50일이 되었다니. 벌써.
너의 50일 즈음 사진을 찍으러 스튜디오에 갔던 날이 생생히 살아나. 엄마는 몹시 긴장했어. 너는 아주 어릴 때부터 '결정적인 순간에 잘한다' 소리 듣는 선택형 순둥이었어. 늘 순한 건 아니지만 중요한 날에는 울지 않고 엄마를 잘 도와줬지. 모든 게 순조로웠어. 그럼에도 초보 엄마는 차를 타러 길을 나서며, 차를 타고 가는 중에, 스튜디오에서 옷을 갈아입히며, 중간에 젖을 먹이는 동안, 촬영장소에 너를 내려두고 나오며 엄청 조마조마했어.
너는 내내 잘 버텼어. 그때는 몰랐는데 100일 촬영할 때 보니까 50일 촬영에는 순전히 버티고 있었다는 걸 알겠더라. 막바지에 갑자기 딸꾹질을 시작했어. 더 이상 못 버티겠다는 듯 으앙 울음을 터뜨렸어. 작가님은 그걸 마지막으로 찍으시더라.
다음 날 작가님이 보내주신 사진들을 보는데 마지막 우는 사진에서 멈췄어. 마음이 아팠어. 그때 50일 된 아기 엄마였던 나는, 네가 울면 마음이 너무 아팠어. 싫었어. 얼른 울음을 멈추게 해주고 싶기만 했어. 우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어. 액자에 담을 사진을 고르는 중이었는데 우는 사진을 고를 마음은 당연히 없었어. 바로 탈락이었지.
그런데 너의 1년을 앞두고, ㅇㅇ이모 아가 소식에 지나간 사진을 뒤적이다가 네가 우는 사진에서 다시 멈췄어. 이번에는 빵 터져서 한참 동안 웃었어. 작가님이 왜 사진을 찍었는지 알겠어. 이제 보여. 네가 울 때 무척 귀여워. 눈두덩이의 살, 콧구멍 모양, 이빨 없는 잇몸, 입에 짜증 좀 봐, 얼굴에 살 오른 건 또 어떻고 아, 안아주고 싶다! 왜 액자에 넣어서 두고두고 보고 있지 않았을까 아쉬울 정도야.
엄마 마음에는 공간이 있어. 예전에는 네 웃는 모습만 들어갈 수 있는 작은 공간이었지. 바늘만 들어갈 수 있을만한 작은 공간에는 너의 기쁜, 즐거운, 차분한 상태만 겨우 받아들일 수 있었어. 그런데 배고픈, 슬픈, 화난, 짜증난, 더운, 흥분한 등 너의 다양한 상태를 받아들일수록 그 공간이 넓어졌어. 이제는 네 우는 모습이 드나들 수 있게 제법 커졌지. 그 사이로 바람이 들락날락해.
네가 자라갈수록 내 마음을 넓히고, 마음 속 공간 키워야겠어. 너는 내 마음 안에서 노는데, 널찍해야 네가 마음껏 다니지. 시원한 바람이 불어야 상쾌하지. 곧 네가 걷기 시작하겠지. 이 마음의 공간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자라날 거야. 곧 달리고 점프하겠지. 엄마가 계속 넓힐게. 이 안에서 신나게 뛰놀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