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ank, 감사하다
think(생각하다)와 thank(감사하다)는 원래 하나의 뿌리 "생각, 기억"이라는 말에서 갈라진 자매 같은 사이래.
기본이 되는 þankaz가 "생각, 기억"을 뜻했고 자연스럽게 þencan "생각하다"라는 동사가 만들어졌지.
사람이 누군가의 호의를 곰곰이 "생각하고 생각하다 보면(thinking back)" 뭘 깨달을까? 그래, 바로 감사(thanking)야. 그래서 여기에서 þancian "감사하다"라는 동사를 만들어졌어. 신기하지 않니?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그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보고, 내가 이미 가진 것이 무언지 되새기기. 사람은 생각하는 만큼 감사할 수 있대.
난 오늘 제대로 놀 거야. 월요일은 아빠가 쉬는 날이거든. 주말 내내 혼자서 너와 시간을 보내고 난 후 월요일이 되면 제대로 놀아야지 마음을 먹게 돼.
몇 주 전 올림픽공원에 갔다가 소마미술관에 우연히 들렀는데 네가 무척 의젓하더라. 오늘은 용기를 내 더 멀리 예술의 전당으로 길을 나서. 엄마는 미술학도도, 예술을 잘 아는 것도 아닌데 너를 기르다 보면 고요한 시간이 목말라 자꾸 미술관에 가고 싶어.
그런데 오늘은 네가 차에서 좀처럼 가만히 있지 않아. 10분 지나서부터 시작됐어. 카시트에서 일어나겠다며 머리를 들고, 햇빛 가리개를 이리저리 치우다가 얼굴이 덮이면 칭얼대고, 과자는 손에 쥐어주는 족족 던져버려. 40분이 더 걸리는 예술의 전당까지 가는 건 무리다, 포기하고 근처에 있는 실내동물원이나 가자며 주차했어. 유모차를 꺼내 너를 태우고 건물에 들어가려는데 동물원은 휴무. 월요일을 깜빡했어. 머리가 멍해져.
아빠가 옆 건물 스타벅스로 이끌었어. 돌쟁이 엄마여도 스벅은 여전히 로망이니까. 아이스 바닐라 라테를 들이키며 카페인과 당으로 마음을 충전했어. 큰 창가에 앉아 햇빛을 받으니 나른해. '지금이다' 싶어 유모차를 눕혔는데, 오히려 깨버리네. 내려달라고 칭얼대는 너를 태우고 뱅글뱅글 돌며 제발 자라 빌어. 네 목소리는 점점 커지기만 해.
어쩔 수 없이 나와 다시 차에 올랐는데 네가 이번에는 카시트를 안 타겠대. 너에겐 카시트에서 내리고 한 시간 이내에는 안 타는 센서가 부착되어 있거든. 태어날 때부터 붙이고 태어났더라.
차에는 탔는데 카시트엔 앉지 않아. 오도 가도 못하고 한 시간이 지나길 기다려. 금쪽같은 나의 월요일이 차 안에서 흘러가. 조바심이 나는데 너는 차 안을 돌아다니며 노는 게 신나나 봐. 소리까지 질러. 하도 어이없어서 사진이나 찍으려 하니 핸드폰이 없어. 아 스타벅스! '바로 출발했으면 어쩔 뻔했어' 하며 금세 스타벅스에 가서 핸드폰을 찾아와.
겨우 한 시간을 채우고 길을 나서. 주차장 아저씨마저 우리의 절절한 사정을 안타까이 여기시고 주차비를 안 받으시네. 동물원은 쉬고, 아기는 안 자고, 우린 차에 갇혀 있었다는 그 사정을.
이번엔 내가 운전대를 잡고 아빠가 너를 맡아. 햇빛 따사로운 날에 운전하니 기분이 돌돌돌 풀려나가. 뒷좌석에서는 졸린데 잠이 안 와 칭얼대는 너를 달래느라 아빠가 한참 고생하고 있어. 미안한데 운전하는 지금 몹시 신나.
드디어 예술의 전당에 도착했어. 어랍쇼. 가려고 했던 음식점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오늘 휴무야. 생각했던 카페도 너를 데리고 가면 눈치 보일 것 같은 분위기야. 추운 광장을 한참 걸어가야 있는 곳에 가려는데, 중간에 처음 보는 식당을 찾았어. 한산하더라. 여기 오기 전 한 시간을 보내 점심시간을 한참 지나버린 거지.
주인아저씨가 우리만 있을 수 있는 공간을 내주셨어. 동그란 창문으로 빛이 들어오는 너그러운 곳이야. 이제 막 걷기 시작해 세상 모든 걸 만져보고 싶어 하는 네가 맘껏 돌아다녀도 누구에게 미안하지 않아. 비틀비틀 걸음마를 하는 네 모습을 보니, 한 걸음 내딛고 넘어질 듯하다가도 다음 걸음에선 균형을 찾더라. 우리의 오늘도 그런 걸까. 여전히 서성거리며 밥은 먹지만 이런 곳에서라면 서서 먹는 밥도 우아한 것 같아.
'대체 너는 왜 오늘 낮잠을 안 자는가?' 궁금한지 세 시간쯤 지났어. 미술관 입장권을 사러 가는데 갑자기 네가 자. 엄마에게 이 시간 주려고 낮잠을 안 자고 버틴 것처럼. 엄마는 네가 선사해 준 시간을 달게 받아. 전시 앞부분을 풍성하게, 아빠와 단둘이 데이트하듯이 즐겼지.
끝까지 자주길 원한다면 도둑심보일 거야. 전시 중반을 넘어서 결국 네가 깼어. 이후의 전시 내용은 기억이 안 나. 그저 너를 안았다가, 잡고 걸음마해 주다가, 결국 기어 다니게 내버려 두어. 가끔 공공장소에 기어 다니는 아가들의 정체가, 아니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는 엄마들의 정체가 궁금했는데... 나야 나. 분명 너무 정신없었는데, 집에 와서 사진을 보니 네가 잘 때보다 깨어 있을 때 엄마는 훨씬 많이 웃고 있어.
오늘 네가 낮잠을 안 자는 동안 엄마가 한 걸음 내디뎠을 때는 하루 종일 안 풀리고, 계획대로 안 되는 일들 연속이었어. 그런데 두 걸음 내디뎌보니 그 덕분에 휴대폰을 안 잃어버렸고, 너른 공간에서 점심을 먹었고, 아빠랑 손잡고 미술관을 걸을 수 있었어.
네가 비틀거리며 걷는 것처럼, 한 걸음만 걸어봐서는 다 알 수 없는 게 많아. 첫 번째 걸음에서 마음에 안 들고, 속상하고, 아픈 것들이 다음 걸음에서 무엇으로 바뀌어 돌아올지 몰라. 실수를 막아줄, 생각보다 더 좋은, 그토록 바라는 것으로 변할 수도 있지. 오늘처럼.
그래서 오늘 같은 하루를 또 보내고 싶냐고? 돌아오는 길, 나는 다시 자동차 뒷좌석 네 옆에 앉아. 몸을 일으키는 네게 노래를 불러주고, 햇빛가리개를 가만두지 않는 네 손에 과자를 쥐어주고, 내동댕이 치는 과자를 돌고래처럼 잘도 잡아내.
아빠랑 네가 함께 한다면 무수한 오늘을 살아도 좋아.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보면, 오늘이 감사가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