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버 여행기』
The journey matters more than the destination.
수하야,
걸리버 여행기 북클럽 첫 주였어. 이번에는 편하게 읽을 수 있게 매일 분량에 스티커를 붙여주어서 잘 읽었는지 궁금했어.
“걸리버 여행기 재미있었어? 얼마나 읽었어?”
“여기까지 읽었어.”
네가 미안한 얼굴로 나를 봤어.
‘이만큼만 읽었어?’
‘읽을 부분 다 표시해 줬잖아.’
‘오늘은 무슨 얘기 나눠?’
순간 올라오는 말들을 꾹 삼켰어.
“엄마, 그날 다 못 읽었는데 스티커가 붙어있으니까 헷갈려.”
아, 엄마가 편하게 해 주려던 것이 책 읽기를 숙제로 만들어버렸구나.
“그럼 오늘은 여기서 같이 읽을까?”
“응!”
나란히 앉아 책을 읽어주었어. 걸리버의 첫 번째 여행지 릴리펏의 중반부 넘어갈 때 네가 말했어.
“릴리펏에서 태어나지 않아서 다행이야.”
“왜 그렇게 생각해?”
“엄마 아빠를 1년에 한두 번만 만날 수 있고 사랑 표현도 못 하잖아. 왜 그렇게 하는 거래?”
정말 안 됐다는 표정으로 네가 물었어.
“릴리펏 사람들은 그렇게 해야 아이들이 바르게 자란다고 생각한대.”
“그런 식으로 바르게 자라는 건 싫어. 엄마, 아빠랑 같이 있으면서 바르게 자라고 싶어.”
그 말과 함께 엄마 목을 안아주었어. 걸리버 여행기를 읽다가 이런 말 들을 줄은 몰라서 더 감동이었지. 나도 너의 등을 토닥였어.
그날은 재미있었지만 우리는 결국 걸리버 여행기를 끝까지 읽지 못했어.
“다 읽을 거야.”
“거인국까지 읽을게”
“끝까지 다 읽을 거니까 기다려줘”
“소인국 릴리펏까지만 읽어야겠어.”
솔직히 말하면, 네가 "소인국까지만"이라고 말했을 때, “어떻게 끝까지 읽게 만들지?” 고민했었어. 우리가 정한 책인데. 시작했으면 끝까지 읽어야 하는 거 아닐까? 엄마 스스로 마음을 들여다봤어. 완독을 바라는 이유가 뭘까? 끝까지 읽는 것만이 정말 중요한 걸까?
네 마음을 생각해 봤어. 정한 책 끝까지 읽고 싶은 마음, 읽다 보니 재미는 있는데 생각만큼 진도가 빨리 나가지 않아서 답답한 마음, 엄마는 벌써 다 읽어간다니 급해지는 마음, 이번에는 여기까지 해야겠다 정리하는 마음까지.
걸리버 여행기는 "지금" 수하에게는 조금 어려운 책이었어. 우리가 달걀 뾰족 파와 달걀 넓적파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 기억나?
“달걀을 뾰족한 곳으로 깰 것인가? 넓적한 곳으로 깰 것인가?로 싸울 일이야?”
엄마가 물었을 때 너는
“달걀은 뾰족한 곳이 있고 넓적한 곳이 있잖아. 넓적한 곳으로 깨는 게 아니지 뾰족한 곳으로 깨는 게 더 잘 깨진대.”라고 대답했어.
“그럴 수는 있지. 그렇다고 뾰족한 곳으로 깨는 사람과 넓적한 곳으로 깨는 사람이 싸워야 할까?”
다시 물었을 때도 너는
“아니, 정말 과학에서 달걀은 뾰족한 곳으로 깨는 게 잘 깨진대.”라고 대답했어.
“그래 과학이 맞을 거야. 그런데 그걸로 싸워야겠어?”
세 번째 물었을 때 너는
“왜 싸워?”라고 되물었어.
“그래. 여기서는 어른들이 쓸데없는 걸로 사람을 미워하고 싸운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야.”
세 번 질문하고서야 네게 진짜 의미를 설명할 수 있었어. 그만큼 “지금” 수하가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야. 이 책에는 어른들의 세계를 풍자하는 내용이 많거든.
어떤 책이 “지금” 나에게는 잘 맞지 않는 경우가 있어. 그냥 읽어서는 맛을 잘 몰라. 하지만 시간이 좀 더 흐르면 달라져. 수하가 세상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되는 “그때” 다시 한번 읽어봐. “그때”는 재미있어서 푹 빠질 거야. 걸리버 여행기는 확실히 매력적인 책이니까.
너는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중요한 발견을 했어.
"나는 여자가 주인공인 책들이 더 잘 읽혀."
너는 독서를 통해 너 자신을 알게 된 거야. 그런 걸 우리는 취향이라고 하지. 수하는 취향을 발견했어. "지금"의 자신을 알게 됐어. 그것만으로 충분해. 아니, 그 이상이야.
엄마도 배웠어. 완독을 바라는 마음은 엄마의 숙제였어. 끝까지 읽는 것보다 과정에서 무엇을 발견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걸 알았지. 네 덕분에 엄마도 자꾸 배워. 과정을 존중하는 마음을. 너에게 발맞추는 유연함을.
다음 주에는 도서관 가서 시즌2 책 고르자. 여자가 주인공인 책으로. 네 취향을 따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