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은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야

『안네의 일기』

by 참읽기

Writing is the proof that I am alive.


수하야,


너는 엄마가 무슨 책 읽고 있는지 늘 보고 있더라.

“엄마가 읽는 책 제목 알아, 나목.” 하며 배시시 웃고,

제인 에어는 다 읽었어?”라고 말해서 엄마를 깜짝 놀라게 해. 이번 안네의 일기도 그렇게 시작되었어. 엄마가 다른 어른들과 함께 하는 북클럽에서 읽기로 했거든. 엄마 책상에 놓인 책을 보자마자 집어 들며 “나도 읽고 싶었어!”라고 했지. 너와 함께 읽으니 혼자 읽을 때보다 풍성해졌어.


“엄마, 나는 안네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어. 은신처 안에선 나가지 못하잖아. 그런데도 열심히 일기를 쓰고 공부를 했어. 아무 일도 없을 것 같은 평범한 일상인데도 하루마다 다른 점을 찾아서 이렇게 쓰고 말이야.”

너는 그걸 벌써 알아차렸구나. 솔직히 말해서 엄마는 초등학생 때 안네의 일기를 끝까지 읽지 못했어. 매일 똑같은 상황, 비슷비슷한 이야기가 계속 쓰여 있는 것 같았거든. 똑같은 공간, 똑같은 사람들, 따라갈 만한 줄거리가 있지도 않고 대단한 모험도 아니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지금은 안네가 대단한 모험을 했다고 생각을 바꿨어. 먼 길을 떠나는 것만이 대단한 모험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거든. 일상에서 아주 조금씩 달라지는 풍경을 찾아내고, 같은 사람들의 미묘한 변화를 관찰하고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성장을 감지하는 것. 이게 대단한 모험이 아니면 뭐겠어. 안네는 은신처에서 일기를 쓰며 엄청난 모험을 한 거야. 그래서 엄마는 안네가 자유를 되찾아 그 빛나는 모험의 뒷이야기를 직접 들려주기를 간절히 바랐어. 안타깝게도 안네는 일기만 남기고 떠났지.


“안네는 왜 계속 일기를 썼을까?”

“안네한테 일기는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은 친구 같아.”

“일기장이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은 친구가 되다니 안네가 일기장을 대하는 마음이 참 남다르다. 그렇지?”

“이름도 지었어. 키티.”


안네가 키티에게 마음을 터 놓은 것과 비교할 수 없지만, 엄마도 안네의 마음을 조금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어. 너를 막 기르기 시작했을 때, 네가 작고 소중해서 밖에 나가는 게 무척 조심스러웠어. 하던 일을 그만두고 너와 단둘이 집에 있을 때면 좋으면서도 답답했어. 엄마가 그전에는 열심히 일하는 것도, 밖에 나가 노는 것도 좋아했거든.


솔직히 말하면, 그때 엄마는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퇴장당한 기분이었어. 물이 계속 흘러와. 사람들은 헤치며 달려가고 올라가는데, 나는 앞으로도 뒤로도 가지 못하고 버티고 있는 기분. 너를 품에 안고 있으면 세상에서 가장 부유했지만, 잠든 너를 눕히고 거실로 나올 때면 홀로 남겨진 느낌이었어. 같은 음악을 반복해서 듣고 또 들었어. 다음 곡으로 넘어갈 수 없었어.


아무도 나를 불러주지 않는 시간, 내가 무엇을 잘하던 사람인지 증명할 길 없는 그 고립. 어제같은 오늘, 오늘같은 내일. 엄마는 나를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펜을 잡았단다. 너에게 편지를 썼어.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네게, 매일 일어나는 일들을 남겼어. “수하야”라고 시작해야 글을 쓸 수 있었어. 안네가 은신처의 벽을 바라보며 키티에게 일기를 썼던 건 기록이 곧 '내가 살아있다'는 유일한 증거였기 때문일 거야. 네가 나에게는 키티 같은 존재였지. 10년이 지나 그때의 글을 네가 읽는다고 생각하니 모든 게 꿈만 같아.


엄마는 여전히 일기를 쓰고 있어. “수하야”로 시작하는 편지는 아니야. 지금은 네게 직접 말할 수 있어서 그렇게 쓰게 되지 않더라. 일기를 쓰면 하루를 두 번 사는 거야. 하루를 다 살고 나서, 일기를 쓰면서 한 번 더 살아보는 거지. 다시 살면서 그날에 이름을 붙이면 하루하루 소중하지 않은 날이 없어. 다음 날을 맞이할 힘이 생겨. 너도 느껴봤으면 좋겠다.


두 번을 살아도 너와 함께 하는 오늘이 소중해.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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