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우리 이제 둘 아니고 셋이 산다!"
임신 테스트기의 두 줄이 만들 낸 환호성. 은서 씨는 출산을 한 달 앞둔 이 시점에도 아직 그 날의 환호성이 들리는 듯 하다. 저출산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시대임에도 은서씨 부부는 결혼 2년 만에 임신을 계획했다. 직장 여성인 손은서 씨가 결정한 임신에는 어떤 생각과 어떤 감정이 담겨있는지, 임산부로서의 지난 9개월은 은서 씨 인생에서 어떤 의미로 남을지 그 모든 이야기들을 담아보았다.
"사랑이에게 인사하세요."
은서 씨가 임신 초기, 가까운 지인들에게 초음파 사진을 보내며 덧붙이던 인사이다. 열무, 튼튼이, 딱풀이 등 다양한 태명 후보가 많았지만 결국 은서 씨가 선택한 태명은 '사랑이'였다.
"왜 그런 말 있잖아요. 드라마나 영화는 제목따라 가고, 가수는 노래 제목 따라 간다는 말. 그 말처럼 우리 아이도 사랑을 많이 받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지은 태명이예요.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이름 덕인지 주변에서도 사랑이를 많이 예뻐하는 것 같아 잘 지었다고 생각해요. 아예 이름도 사랑이라고 지어줄까 고민될 만큼요."
아이의 태명을 소개하는 은서 씨의 얼굴에는 정말로 아이에 대한 사랑이 가득 느껴졌다. 요즘같이 딩크족이 늘어나는 추세에도 임신 결정을 내린 은서 씨는 언제, 어떤 계기로 임신을 결정하게 되었을까?
"결혼하고 신혼집 입주 문제로 임신 계획을 미루기는 했지만 애초에 아이 없는 결혼을 상상한 적은 없어요. 아이를 워낙 예뻐하기도 했고, 딩크가 아니라면 한 살이라도 젊고 건강할 때 임신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신혼집 정리가 끝나자마자 신랑과 2세 계획을 상의했고 얼마 안돼서 임신에 성공했죠.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여름 아기를 출산 예정이라, 더운 날에 산후조리 하게 되는 부분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단 거네요(웃음)"
빛과 그림자
임신은 한 생명이 탄생하는 크나 큰 축복이다. 하지만 큰 축복인 동시에 매우 힘든 일이기도 하다. 사람에 따라 입덧이나 신체의 통증, 심리적 불안 등 다양한 부작용이 생기기도 하니까. 은서 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임신 테스트기의 두 줄을 확인했을 때는 정말 행복했지만 현실적인 면에서는 행복보다 고통이 컸어요. 입덧이라던가, 손,발목의 통증이라던가, 소화불량으로 인한 역류성 식도염 증상으로 밤새 앓던 시간들··· 그럼에도 임신 중 우울증이나 감정기복 없이 잘 지낼 수 있었던 건 옆에서 잘 붙잡아 준 신랑 덕분인 것 같아요."
은서씨는 임신의 고충과 그 해결에 대해 설명하며 한 가지 일화를 들려주었다.
"임신 초기, 아기집이 확장하면서 생리통과 같은 심한 통증이 올 때가 있었어요. 호르몬 때문인지 감정 컨트롤도 잘 안됐었구요. 너무 힘들어서 신랑에게 '1센치도 안 되는 세포 덩어리가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한다. 나중에는 일이 더 커질까봐 무서울 지경이다.' 라며 속상함을 토로했는데, 그 때 신랑이 마치 제 마음을 다 이해하듯 맞장구 치며 그러더라구요. '손가락에 작은 가시 하나만 박혀도 그걸 뽑기 전까지는 그렇게 거슬리고 아픈데 하물며 살아 숨쉬는 생명체는 오죽할까. 다는 몰라도 은서가 힘들 것 같아서 걱정이 많이 된다.' 라고요. 별 말 아닐지 몰라도 그런 사소한 공감 하나가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몰라요. 나 혼자만 감당하고 있는게 아니라는 사실이 마음에 와닿은 순간이었거든요. 아마 길고 힘든 임신기간을 그 기억으로 잘 버텨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임신과 직장
앞서 말했듯, 어느 여성에게나 임신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직장 여성에게는 더욱 어려운 점이 많다. 드라마에서는 여성이 임신을 하면 회사에는 그 사실을 숨기려 하는 장면이 자주 보이며 그것이 곧 현실이다. 최근엔 육아 복지 제도가 개선되며 새 정책이 많이 생겼다고는 하지만 실효성은 글쎄, 썩 만족스럽지 않다. 은서 씨 또한 임신한 직장 여성으로서 예외는 아니었다.
"직장에 임신 사실을 알리고 난 후에 '조금 더 늦게 말할 걸 그랬나?'하는 후회를 몇 번 했어요. 윗분께서 제가 없을 때 동료들에게 '은서 씨는 언제까지 다닌다고 하던가요?' 라는 질문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거든요. 그 말을 들으니 아차 싶었어요. 괜히 저 때문에 곤란했을 동료 분들께 미안하기도 하고, 당사자에게 쉽게 묻지 못하시는 윗분들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내가 먼저 퇴사 얘기를 꺼내길 기다리시는건가?' 하는 섭섭한 마음이 들었어요. 꽤 오래 다닌 회사인데 그런 소리를 들으니 저도 속이 상하더라구요."
그 외에도 은서 씨는 '역시 임신하면 다 저래~'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임신 전보다 더 열심히 일했다고 한다. 5년의 근무 중 지난 6개월이 가장 열심히 일했던 시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말이다. 임신했기 때문에 당연히 배려받게 되는건 싫었기 때문이다. 이 후, 은서 씨는 직장 내 육아 복지에 대해서도 덧붙였다.
"저는 임산부 복지 혜택을 누리지 못했어요. 지금까지 임산부로 일한 직원이 없었던 탓에 그런 시스템이나 복지에 대해 회사가 잘 모르더라구요. 저 역시 주변에 임신한 지인이 없어 그런 부분을 잘 알진 못했고요. 임산부 조퇴가 가능한 '근로시간 단축법'이라는 제도가 있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았죠. 하지만 뒤늦게 알았다는 후회보다 '이걸 미리 알았어도 잘 쓸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관련법 자료를 찾다보니 근로 단축을 신청 얼마 후 퇴사 권고를 받았다는 글들이 심심찮게 보이더라구요. 법정 의무니 뭐니 해도 아직까지는 아쉬운 쪽이 서러워 해야하는 갑을 관계가 현실인 것 같아요."
앞으로의 계획
은서 씨 말대로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은 육아복지이지만 그녀는 벌써 출산 후 육아 계획까지 다 세워둘 정도로 아이를 맞을 준비에 들떠있다.
"남편이랑 상의 끝에 짧게는 3년, 길게는 5~7년 정도 복직을 미뤄두기로 했어요. 그 동안은 육아에만 전념하려구요. 아이가 감수성, 창의성이 형성되는 시기는 태어난 후부터 3살 정도까지인데, 그 시기에 아이를 잘 키워야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부모와 아이 간의 유대감이 탄탄해진대요. 그리고 또, 그 때가 아니면 언제 보겠냐는 마음도 있어요. 100세 시대라는 요즘인데, 제가 육아에 전념하는 시간은 그 중에 고작 3~5년이잖아요. 거기다 아이가 청소년기에 들어서 부모보다 친구를 더 찾게 될 시기, 정서적 사회적으로 독립할 나이까지 생각하면 길어봤자 겨우 20년 안팎인데 아이와 함께 교감 할 시간이 너무 짧은 것 같다는게 저희 부부의 생각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아이를 품에 끼고 있을 수 있는 시간만큼은 귀하게 보내고 싶어요. 하지만 모든 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 가능한 일이라 상황은 언제든 바뀔 수 있겠죠."
한 때는 누군가의 어린 딸이었고, 한 때는 꿈 많은 소녀이기도 했던 은서 씨는 어느 덧 하나의 생명을 책임지는 '어머니'의 길을 준비하고 있다. 아이가 어떤 성향이든 간에 예의바르고 지혜로운 소양을 갖춘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은서 씨는 육아 계획에 대해 이렇게 덧붙였다.
"아이의 모든 순간에 함께 해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불가능 하잖아요. 부모가 없는 순간에도 어려움을 현명하게 대처할 줄 아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어요."
그녀에게 아이를 품은 시간은 수없이 찾아왔던 고통에도 불구하고 다시 없을 귀중한 시간이었고 너무나도 행복했다고, 미래에 아이에게 말해주고 싶다고 한다.
최근,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인구의 비율이 늘어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경제적, 정서적, 사회구조적 등 여러 측면에서 감내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은서 씨도 이 부분의 예외가 될 수는 없었고, 직장에서 남모를 고충도 많이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산과 육아를 결심한 은서 씨의 용기를 높이 사며, 그녀의 아이가 태명처럼 정말 사랑이 가득한 아이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