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시인의 사회 '닐 페리' 1인칭 인터뷰
숨 쉴 틈. 나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나의 '숨 쉴 틈'이라 표현하고 싶다. 웰튼고등학교 시절, 내 어깨를 짓누르는 압박감은 버겁기만 했고 압박감 위에는 부모님의 기대까지 얹혀있었다. 그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 나는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다. 힘들다고 우는 소리를 낼 겨를조차 없었다. 나는 용케도 그렇게 1년을 보냈다.
2학년이 된 첫 날, 존 키팅 선생님을 처음 만났다. 작은 키에 처진 눈꼬리. 전임 영어선생님을 이어 새로 부임한 그는 척 봐도 선한 인상이었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앞으로의 영어 수업에 대해 예상하고 있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내 인생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키팅 선생님은 첫 수업부터 남달랐다. 휘파람을 불며 등장해서는 어떤 말도 하지 않고 뒷문으로 나가셨다. 황당한 전개에 우리는 저마다 물음표를 띄운 채 서로를 보았다. 그는 이내 돌아와 학생들에게 빨리 따라오지 않고 뭐하냐고 했다. 그제야 나와 친구들은 그를 뒤따라갔다. 도착한 곳은 한 번도 눈여겨 보지 않던 졸업생들 사진 앞이었다. 그 곳이 내 인생의 울림이 시작된 곳이다.
"Carpe Diem. Sieze the day, boys. Make your life extraordinary."
삶은 유한하니 현재를 즐겨라. 특별하게 살아라.
누구도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지 않았다. 아마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 존재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 그날 그날 주어진 일을 기계처럼 해내며 살아오던 내게 키팅 선생님의 그 말은 잔잔한 연못에 던져진 돌처럼 파동으로 퍼졌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뭘까?' 라는 의문은 가질 수도 없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궁금해 했던 적이 있었나?'라는 질문이 앞섰기 때문이다. 대답은 '아니오'였다.
선생님께 관심이 생긴 나는 졸업연감을 뒤졌다. 선생님 역시 웰튼의 졸업생이라 들었던 터라 연감을 통하면 뭐라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알게된 '죽은 시인의 사회'. 궁금증을 참지 못한 나는 그에게 직접 '죽은 시인의 사회'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는 비밀을 지키라는 당부와 함께 '죽은 시인의 사회'에 대해 알려주었다. 그것은 친구들과 함께 시를 읽고, 짓고, 공유하는 모임이라고 했다. 학교에서 사적 모임을 허락하지 않아 비밀에 부쳤으며 지금은 진행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게되었다. 그 말을 듣자 모임을 계승하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들었다. 충동적이었지만 후회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것은 억눌린 내 처지에 대한 분출이었던 것도 같다.
당시 나의 룸메이트였던 토드 앤더슨은 상당히 소극적인 성격이었다. 그 모습이 꼭 밝은 척하는 껍데기 속 나처럼 느껴져서 그랬을까, 나는 그 아이를 꼭 '죽은 시인의 사회'에 참여시키고 싶었다. 토드는 처음엔 거절했지만 나의 완강함에 결국 서기로 합류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숨 쉴 틈'은 내가 여태 살아온 시간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더 큰 의미로 내게 다가왔다. 친구들과 시를 읽고 공유하며 나는 살아있음을 느꼈다. 어설프고 투박해도 그 자체로 빛나는 것이 꼭 우리의 청춘과 닮아 있었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열띠게 토론하고, 때로는 시시덕거리기도 하며 자아를 찾아가던 나에게 또 하나의 마법같은 순간이 찾아왔다. 셰익스피어의 '한 여름 밤의 꿈' 연극 오디션에 붙은 것이다. 그것도 주인공으로. 나는 그 때만큼 온전히 기뻐해 본 적이 없다. 아버지도, 선생님도 아닌 온전히 나만의 기쁨을 누려 본적은 그 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분명 아버지가 반대하실거란 걸 알고 있었지만 오디션에 붙었다는 사실은 그 걱정을 지워냈다. 난생 처음으로 아버지의 뜻을 거역할 용기가 생긴 것도 같았다.
다가오는 공연일자와 늘어나는 연습량에도 나는 지치지 않았다. 오히려 연습이 끝나는 것을 아쉬워 할 정도로 즐기고 있었다. 연기를 시작하면 '닐 페리'는 사라지고 오직 '퍽'만이 무대에 남는 기분이었다. 그 날도 어김없이 연기 연습을 마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기숙사로 돌아왔다. 곧 나의 연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설레게 했다. 하지만 그 설렘은 찰나의 불꽃처럼 사라졌다.
기숙사 방문을 열자 아버지가 앉아있었다. 순간, 나무 바닥이 얼음장처럼 느껴졌다. 아버지는 무서운 얼굴로 내가 듣고 싶지 않던 말을 끝내 내뱉고야 말았다. "연기를 당장 그만둬. 넌 의대에 진학해야 해. 너에게 거는 기대가 얼마나 큰 줄 아니?"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키팅 선생님을 찾아가기로 했다. 자초지종을 설명드리고 해결책을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처음으로 내가 원치 않은 말씀을 하셨다. 아버지께 말씀드리라고. 답답한 마음에 눈물이 앞섰다. 조금 더 쉬운 방법은 없냐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
용기가 없던 어린 나는 결국 아버지께 말씀드리지 못했다. 선생님께는 말씀드렸다고 거짓말을 했다. 비겁했지만 최선이었다. 연기를 포기하냐 마냐의 갈림길에서 포기하지 않는 쪽의 힘이 너무 강해 나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아버지 몰래 계속 연습을 나간 끝에 나는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무대 위에서는 허락되지 않은 연기를 한다는 불안마저도 사라졌다. 객석에 나를, 그리고 나의 연기를 사랑하는 친구들과 선생님이 있다는 사실이 든든했다. 마지막 대사를 마치고 무대 아래로 내려올 때 느꼈던 그 벅찬 마음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 벅참은 아버지가 극장에 오셨다는 소식에 참 쉽게도 깨졌다.
도살장에 소 끌고가듯 나를 집으로 데려간 아버지는 학교를 옮긴 뒤 하버드 의대로 진학하라고 하셨다. 거부의사를 표했지만 아버지는 완강했고 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뜨셨다. 스치듯 마주친 어머니의 눈에서 연민과 슬픔을 봤던 것같다. 그 눈빛을 끝으로 어머니도 안방으로 들어가셨다. 홀로 남은 나는 헤진 쇼파 위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반복되는 이 굴레를 벗어날 방법을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창문을 열자 살을 에는 바람이 기다렸다는 듯 살같을 때렸지만 추위는 느끼지 못했다. '퍽'을 연기하며 썼던 화관을 창가에 둔 채 발걸음을 옮겼다. 마지막으로 나를 기억할 물건은 그 화관이었으면 했다. 나의 선택은 꼭 연기때문만은 아니다. 끝없는 강압과 복종으로 얼룩진 지난 날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될 날들을 생각하면 헝클어진 인생의 타래를 풀 자신이 없었다. 그냥 잘라낸 뒤 새로 시작하고 싶었다.
나는 자유로운 곳으로 간다. 그 어떤 속박도 압박도 없는 곳으로, 내가 온전히 '나'일수 있는 곳으로. 짧은 인생동안 가장 나 다울 수 있었던 지난 몇 달이 머릿속에 스친다. 그 기억을 가져 갈 수 있음이 다행스러울 뿐, 더 이상 삶에 미련은 없다. 나없는 나로 살던 잿빛 인생에 짧게나마 색을 입혀줬던 '죽은 시인의 사회'를, 나는 나의 '숨 쉴 틈'이었다고 표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