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를 사랑하는 이유> 공연후기
저 푸른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땅이 꺼진다 해도
당신만 날 사랑한다면 괜찮아. 세상 어떤 것도 내겐 중요하지 않아.
유명한 곡의 가사지만 어떤 곡의 가사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아래의 링크를 클릭하여 곡을 들어보면 다들 "아~ 이 노래!" 를 외칠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멜로디만 알던 이 곡의 가사와 감정까지 알게된다.
https://youtu.be/pyxYj7MISIs?si=33TmEGH9nrSJ5MAQ
서두에 언급한 노래는 프랑스의 국민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L'hyemne A L'amour(사랑의 찬가)이다. 에디트 피아프의 대표곡이기도 하고 국내에서도 각종 광고에 삽입되어 많은 이들에게 익숙하지만, 곡의 가사와 작곡배경 등을 알기 위해서는 좀 더 깊은 관심이 필요하다.
공연은 이런 곡에 대해 조금 더 알아가는 계기가 되어 준다. 멜로디만 알고 관람한 공연과 곡의 해석까지 알고 관람하는 공연은 감동 면에서 큰 차이를 낸다. 때문에 관람객들은 셋리스트의 곡들을 익힌 후 공연장에 간다. 공연을 통해 최대한 많이 느끼고, 최대한 많이 감동받기 위해 필수적으로 거치게 되는 준비 과정이다.
(참고로, 에디트 피아프의 L'hyemne A L'amour(사랑의 찬가)는 연인이 죽은 후 너무나도 괴로워하던 그녀가 힘겹게 슬픔을 이겨내며 발매한 노래라고 한다. 이 얘기를 모르고 들을 때 막연히 느껴지던 슬픔이 이런 마음이었나보다.)
지난 토요일(12일), 코로나19의 장기화로 해외여행을 못가 괴로운 자들에게 딱 맞는 공연이 있었다. 음악이라는 티켓으로 관객을 파리로 데려가는 <파리를 사랑하는 이유_뮤지컬&오페라>가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렸다. 스톰프 뮤직에서 주관한 이 공연에서는 파리를 배경으로 한 오페라 아리아들과 뮤지컬 넘버를 실력있는 솔리스트들이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선보였다. 오케스트라의 웅장함과 솔리스트들의 목소리를 기대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공연장을 찾았다.
롯데콘서트홀은 늘 종소리로 공연의 시작과 끝을 알린다. 이날도 어김없이 종소리가 울리고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등장하며 공연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착석 후 각자의 악기를 조율했다. 누군가는 소음으로 느낄지 모를 이 조율소리는 나에게 늘 설렘으로 다가온다. 곧 공연이 시작될 거란 생각에 감정이 고조되기 때문이다.
연주자들의 조율 소리가 잦아들고, 지휘자의 등장과 함께 <카르멘 서곡>이 시작되었다. 이 날 지휘는 차이코프스키 음악원 지휘과에 한국인 최초로 입학하고 졸업한 안두현 지휘자가 맡았다. 그의 지휘 특징은 보는 사람도 그의 열정에 빠져들만큼 힘차게 지휘한다는 것이다. 그가 지휘하는 카르멘 서곡은 정말 눈 앞에 오페라의 한 장면이 펼쳐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힘차고 신났다. 뒤이어 로열 국립 오페라단 출신 베이스바리톤 길병민 씨가 카르멘 서곡을 '투우사의 노래'로 이끌었다. 그는 특유의 힘있고 묵직한 저음으로 노래를 시작했고, 곡의 중반부에 호흡을 길게 끌며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부분을 기가 막히게 표현했다. 연주는 완벽했고 곡이 끝나자 큰 박수가 터져나왔다.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역시 코로나19 상황이었다. 원래 '투우사의 노래'에는 연주자의 신호에 맞춰 관객들이 "올레!"라고 외치는 부분이 있다. 그때 연주자와 관객이 하나되는 맛이 있는데, 요즘은 올레는커녕 '브라보!'도 외치지 못하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이 남았다.
파리하면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 '낭만'. 이 낭만의 도시에서 로맨스를 언급하지 않는 것은 반칙이다. 그 중 가장 상징적인 로맨스를 하나만 꼽으면 그건 '로미오와 줄리엣'이 아닐까. 이 날 공연에서도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의 아리아가 두 곡 연주되었다. 먼저 소프라노 손지수 씨가 청아하면서도 가벼운 목소리로 줄리엣의 노래 '꿈 속에 살고 싶어라(Ah! Je veux vivre dans le reve)'를 연주하고, 뒤이어 테너 김민석 씨가 청량하면서도 힘있는 목소리로 로미오의 '떠올라라 태양이여(Ah, leve-toi soleil)'를 선보였다. 공연 전에 곡을 익히기 위해 듣던 안드레아 보첼리 목소리와는 또 다른, 테너 김민석 씨만의 느낌으로 재해석 된 '떠올라라 태양이여(Ah, leve-toi soleil)'는 기대 이상이었다. 부드러운 도입부로 시작되었지만, 곡 후반 김민석 씨의 청량한 고음 "Viens! Parais!"는 객석의 많은 이들을 줄리엣으로 만들만큼 감정 전달이 탁월했다.
사랑의 벅참을 표현한 아리아 두 곡이 끝난 뒤, 바리톤 박현수 씨가 L'hyemne A L'amour(사랑의 찬가)를 부르며 무대를 이어갔다. 곡이 오페라 아리아가 아닌, 프랑스 대중가요이기 때문이었을까. 이번 무대는 스탠드 마이크 대신 핸드 마이크로 조금은 자유롭게 표현되었다. 보통의 바리톤들에 비해 무게가 덜한 박현수 씨의 목소리에 착 감기는 선곡이라는 생각이 노래를 듣는 내내 떠나질 않았다. 평소 자주 듣던 곡이긴 하지만 오케스트라 반주로 들어본 적은 처음이라 좀 더 풍부하게 곡을 느낄 수 있었고, 주로 겨울에 듣던 곡을 여름 코앞에서 들으니 색다른 매력이 있었다.
파리는 낭만과 열정으로 표현되는 만큼이나 분노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 분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프랑스 대혁명'이 아닐까. 낭만의 파리를 표현한 무대들 뒤에는 역사 속 프랑스 대혁명을 그려 낸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넘버들이 아르츠 챔버 오케스트라의 메들리로 연주되었다. 현악기의 선율이 깔리고 그 위에 리더가 지휘하듯 묵직한 관악기 소리가 얹어지니 '레 미제라블' 장면들이 하나씩 눈 앞에 지나갔다. 특히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이 연주될 때는 사기높은 혁명의 기운이 정말 잘 드러났다. 가사 없이 들어도 곡의 메시지가 잘 전달될 정도로. 이어 뮤지컬 배우 김성식 씨가 혁명 과정에서 죽은 친구들을 기리며 슬퍼하는 내용의 'Empty Chairs at Empty Tables'를 부르며 분위기를 전환시켰고, 그 후 레미제라블의 가장 유명한 넘버 'I Dreamed a Dream'이 연주되며 1부의 막이 내렸다.
2부는 극중 배경이 파리인 '오페라의 유령' 넘버들로 시작되었다. 연주는 모두가 알 법한 서곡으로 시작해 부드럽고 감성적인 'The Music of the Night' 으로 이어졌다. 서곡에서 'The Music of the Night'으로 전환되는 지점의 바이올린 소리가 감정을 건드려 듣다가 나도 모르게 감탄이 나왔다. 뒤이어 손지수 씨가 소프라노의 대표곡인 'Think of Me'를 부르며 고운 소리와 편안한 고음을 선보였다. 그는 곡 후반의 고음 파트에서 감정을 탁월히 전달해 관객들에게 짙은 감동을 전했다.
뮤지컬 배우 노윤 씨는 뮤지컬 <팬텀>의 '이렇게 그대 그의 품에'로 오페라의 유령 테마를 자연스럽게 이어갔다. 개인적으로 이번 공연의 뮤지컬 넘버 중에는 이 곡을 가장 좋아한다. 크리스틴을 보내는 팬텀의 절절한 마음이 이 한 곡에 너무나도 잘 표현되어 들을 때마다 몰입하게 되기 때문이다. 보통 다른 곡들은 차분하게 도입부를 시작하여 점점 감정을 고조시켜가는데, 이 곡은 시작부터 감정이 가득 차있다. 그것을 꾹꾹 눌러 참다가 곡의 마지막 부분에 터트리는 듯한 느낌으로 곡이 끝난다. 나는 이번에도 역시 너무 몰입한 나머지 곡이 끝날 때쯤엔 눈가가 촉촉해져 있었다.
파리의 열정, 낭만, 혁명 그리고 뮤지컬까지 보다 보니 어느 덧 공연의 막바지에 다달아 있었다. 공연의 마지막에는 크로스오버 그룹 '레떼아모르'가 <노트르담 드 파리>의 대표 넘버 '대성당들의 시대(Le temps des cathedrales)'와 '아름답다(Belle)'를 4중창으로 선보였다. 평소 목소리 블렌딩 맛집으로 통하던 팀답게 한 명씩 화음을 쌓아 완성한 하모니가 웅장하게 울려퍼지자 객석에는 전율이 일었다. 특히 곡의 도입부터 차츰 고조되던 감정선에 테너의 고음이 화룡점정으로 얹어질 때 소름돋는 감동이 마음을 울렸다. 그 후에는 1부의 무대를 되돌아 보듯, '로미오와 줄리엣 '의 '사랑한다는 것(Aimer)' 4중창이 연주되었고, 전 출연자들이 '레 미제라블'의 넘버를 모두 모은 'One Day More'를 앵콜곡으로 부르며 공연은 마무리 되었다.
늘 생각한 거지만 음악은 역시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다.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껴야 음악을 감상한다고 말 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한 공연이었다. 비록 몸은 잠실의 롯데콘서트홀에 머물렀지만, 2시간 동안 파리에 다녀온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이 음악과 스토리텔링의 힘이 아닐까.
스톰프 뮤직 주최의 공연은 늘 기획이 마음에 든다. 지난 4월의 '오페라스타'에 이어 이번에 있은 '파리를 사랑하는 이유'까지. 7월에 있을 오페라 해설 공연도 기대가 되는 가운데, 코로나가 하루 빨리 종식되어 자유로운 공연관람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