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었다고 빛까지 잃은 것은 아니야."

영화 <비긴 어게인> 리뷰

by 문수민


common0ALYQRBB.jpg 영화 <비긴 어게인> 포스터


- Can a song save your life?

- Yes.




2014년 가을, 거리마다 'Lost Stars'를 울려퍼지게 했던 영화 <비긴 어게인>의 원제는 'Can a Song Save Your Life?' 였다. 노래 그 자체보다는 메시지에 조금 더 초점을 두기 위해 'Begin Again'이라는 제목으로 개봉 되었지만, 영화는 원제의 물음에 기꺼이 'Yes'라고 답한다. 화려하지만 고독한 도시, 뉴욕을 배경으로 삶의 방황과 좌절 그리고 성장을 그려낸 <비긴 어게인>은 관객에게 '당신은 길을 잃었을 뿐 빛을 잃은 것은 아니다' 라는 메시지를 던지며 희망과 위로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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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댄 멀리건(마크 러팔로)과 그레타 제임스(키이라 나이틀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친구 '사울'과 음반 레이블을 설립해 능력을 인정받았던 댄은 현재 본인이 세운 회사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해있다. 대중과 예술,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에서 대중 쪽으로 치우쳐버린 사울은 예술을 놓지 못하는 댄과의 의견충돌 끝에 결국 댄을 쫓아내기에 이른다. 설상가상으로 가정불화까지 겹쳐 댄은 아내와도 별거 중이고 자연스레 딸과도 멀어졌다. 주머니 사정은 여의치 않고, 믿었던 친구는 속물로 변해버렸고, 아내와 딸에게마저 외면받는 자신의 신세가 처량해 연신 술만 들이켜는 댄. 취한 그는 마지막으로 딱 한 잔만 더하고 지하철에 뛰어들 심산으로 펍에 들어가는데, 그 곳에서 운명적으로 그레타의 노래를 듣는다.


그레타는 음악으로 교감하며 같은 꿈을 꾸는 남자친구 데이브(애덤 리바인)와 함께 미래를 그리며 뉴욕으로 온다. 데이브의 음반 제작 전 과정에 함께하며 커피 심부름까지 마다않던 그레타지만, 데이브는 만난지 며칠 되지도 않은 레이블의 '밈'과 바람을 핀다. 믿었던 남자친구의 변심을 알자마자 짐을 챙겨 나와버린 그레타는 무작정 친구 스티브(제임스 코든)에게 찾아가고 스티브는 그레타를 자신의 좁은 집에 머물게 한다. 버스킹을 하고, 가끔은 펍에서 공연도 하며 음악 활동을 이어가는 스티브는 공연이 있는 날, 우울에 빠져있는 그레타에게 자신과 함께 가자는 제안을 한다. 그레타는 처음엔 거절하지만 스티브의 성화에 못이겨 결국 동행하고 그 곳에서 본인의 자작곡인 A Step You Can't Take Back 을 부른다.


영화는 그레타의 공연씬을 각각 다른 시점으로 두 번 보여준다. 처음엔 마지못해 노래를 부르는 그레타의 시점, 두 번째는 지하철에 뛰어들기 직전 그레타의 노래를 듣게된 댄의 시점. 인상적인 장면은 후자이다. 여기서 감독은 프로듀서 댄의 머릿속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그레타의 목소리 아래 깔리는 반주를 저절로 움직이는 피아노 건반, 첼로 활, 드럼 스틱 등과 함께 보여주며 관객으로 하여금 소리를 '보는'느낌을 받게 한다. 실제로는 없는 소리가 댄에게만 상상된다는 설정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참신한데 그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존 카니 감독의 탁월한 연출력이 돋보이는 씬이다.


그레타의 목소리에서 가능성을 본 댄은 지하철에 뛰어드는 대신 그레타에게 협업 제안을 한다. 단칼에 거절하는 그레타를 간신히 설득해 사울에게 소개하지만 이미 대중적인 노래에 길들여진 사울은 내켜하지 않고 댄은 또 다시 고민에 빠진다. 회사에서 녹음을 진행하지 않으면 부스며, 장비며 아무것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문제가 컸다. 고민 끝에 댄은 '뉴욕'이라는 이 도시 전체를 녹음실로 쓰자고 제안한다. 곡 마다 장소를 바꿔 도시의 소음까지 음악으로 만들자는 말에 다행히 그레타는 솔깃한다. 그렇게 시작된 댄과 그레타의 음반 작업. 그들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 센트럴 파크 호수의 보트 위, 지하철 등등 뉴욕 곳곳을 누비는 작업 과정에서 원하는 음악을 하고 싶은 사람들을 세션으로 모아 삶의 활력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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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백미인 뉴욕의 밤거리 씬은 많은 사람들이 명장면으로 꼽는다. 분위기, 영상미, 대사, 배경음악 등 모든 것이 완벽한 씬. 이 장면에서 댄은 그레타에게 '이 순간은 진주이며 지금까지의 시간들도 모두 진주였다'는 말을 한다. 자신의 행보를 의심하고 자책하던 세상의 모든 길 잃은 별들에게 '넌 충분히 잘하고 있어.' 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장면이다. 아마 이 장면이 '비긴 어게인'을 누군가의 인생 영화로 만든 가장 중요한 장면이 아닐까?


영화는 마침내 과거를 떨쳐낸 그레타의 미소로 끝이 난다. 그 뒤로 잔잔히 깔리는 Lost Stars는 '길을 다시 찾았다'는 느낌보다는 '길을 잃어도 그 자체가 우리의 인생'이라는 느낌을 전한다. 어느 드라마의 제목처럼, 우리는 모두 이번 생이 처음이다. 당연히 길을 잃을 수도 있고 방황할 수도 있다. 별이 길을 잃었다고 해서 빛까지 잃는 것은 아닌 것처럼, 잠시 방황해도 우리 인생은 여전히 빛나고 있으며, 언제든 다시 시작해도 된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 '비긴 어게인'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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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감독 '존 카니'는 아일랜드 출신으로 1991년부터 1993년까지 2년간 '더 프레임즈'라는 밴드에서 베이시스트로 활동한 경험이 있다. 또한, 국내에서는 영화 '원스(Once)'로 이미 존재감을 드러낸 바 있어 음악에 조예가 깊은 감독임은 알려진 사실이었다. 익숙한 배우도 없었고, 막대한 자본도 들어가지 않았던 독립영화 '원스(Once)'와는 달리 '비긴 어게인'은 헐크로 너무나도 친숙한 배우 '마크 러팔로'와 <러브 액츄얼리>, <캐리비안의 해적>, <오만과 편견> 등 각종 흥행 영화에 다수 출연한 '키이라 나이틀리', 그리고 밴드 '마룬파이브'의 보컬 '애덤 리바인'까지 출연해 개봉 당시 입소문이 빨랐다. 소문난 잔치에다가 먹을 것도 많았던 '비긴 어게인'은 결국 국내에서 3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하고, OST도 각종 음원 차트를 섭렵하는 등 유명세를 이어갔다. 실제로 '마크 러팔로'는 내한 후 미국으로 돌아가 "한국에 가서 비틀즈가 된 기분을 느꼈다"며 "한국으로 이사가고 싶다"는 내한 소감을 전했다.


'비긴 어게인'을 좋아하는 이유는 수도 없이 많다. 잔잔한 듯 하면서도 영화의 감정을 너무나 잘 담아낸 OST가 그 이유일 수도 있고, 2시간 동안 뉴욕에 다녀오는 듯한 영상미가 이유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중 가장 큰 이유는 지친 사람들에게 탁월한 방법으로 위로를 전한다는 점과 거듭 볼 때마다 영화가 새롭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는 '비긴 어게인'을 11번 보았는데, 11번 모두 느낌이 달랐다. '볼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주는 영화' 이 수식어 만으로도 너무나 매력적이지 않나.


이제 뜨거운 여름이 다가오지만 아직은 밤공기가 선선한 요즘, 영화 '비긴 어게인'을 꺼내보며 뉴욕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아마 처음 볼 때와는 느낌이 또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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