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이룰 수 있을지 아직은 모르지만, 나에겐 교복을 입던 시절부터 품어온 작은 꿈이 하나 있다. 언젠가 나만의 보금자리를 마련하면 지하실은 꼭 앤티크한 분위기로 꾸며 턴테이블과 빔 프로젝터를 설치하겠다는 소망. 나무색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의 한 쪽에선 날긋한 턴테이블이 Susan Jacks의 Evergreen을 부르고, 그 위 벽면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듯한 느낌의 그림을 걸어두고 싶다. 방 가운데에는 푹신한 소파를 놓고 바닥에는 카페트를 깔아둘 것이다. 세탁하기가 힘들겠다는 현실적인 생각은 잠시 접어두기로 한다. 그 공간에 완벽히 스며들어서 음악을 들으며, 혹은 영화를 보며 피곤을 씻어내는 맥주 한 모금을 하는 것이 나의 소박한 꿈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현재에는 불가능하기에, 2년 전 여름, 깔끔한 숙소를 잡아 친구와 함께 여행을 떠났었다. 바깥을 즐기는 대신 숙소를 최대한 즐기자며 실내 테마를 잡고 떠났던 짧은 여행이었다. 그래서 무엇보다 숙소를 선정하는 데에 신경을 많이 썼다. 나는 이상하게도 여행 계획을 짜는 과정 중에는 항상 숙소를 선정하는 과정이 가장 설레고, 여행을 다녀와서도 관광을 다녔던 시간보다 숙소에서의 시간들이 기억에 더 오래 남는 편이다. 보통의 여행을 갈 때도 이런데, 하물며 실내 테마로 떠났던 이번 여행은 얼마나 더 설렜을까. 친구와 나 모두 공간의 분위기를 중요시했기 때문에 커튼 하나, 테이블 하나까지 꼼꼼히 살피며 숙소를 정했다.
다양한 인테리어와 실내 분위기를 살피며 숙소를 선정하는 걸 즐기는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순간은, 처음으로 숙소의 문을 열고 그 공간의 첫인상을 마주하는 때이다. 며칠 동안 나의 보금자리가 되어줄 곳이라는 생각과 함께 정말 여행이 시작되었음이 실감 나기 때문이다. 이 여름 여행의 숙소도 첫인상부터 만족스러웠다. 전체적으로 모던한 느낌의 공간에 원목 테이블과 거실장으로 앤티크를 두어 스푼 얹은 듯한 실내는 쾌적했고 또 아늑했다. 현관을 열자마자 보이던 침대의 발치는 아직 보이지 않은 부분까지 상상하게 했으며 몇 발짝 더 들어가면 상상했던 그대로의 깔끔함이 눈앞에 펼쳐졌다. 침대 헤드 위에는 앙리 마티스의 스케치가 연속되는 모던함을 변주하 듯 걸려있었고, 침대 옆의 붙박이장은 공간의 경제적 사용을 거들었다. 옅은 베이지 색에 플라워 패턴을 담은 커튼이 방을 한층 아늑하게 만들어 주었으며, 비록 벽은 내가 상상하던 나무색은 아니었지만, 흰 벽 덕분에 스크린을 따로 준비하지 않고도 빔 프로젝터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여름이었기 때문에 영화는 '더티 댄싱'을 골랐다. 이 영화는 내가 해마다 여름만 되면 찾는 영화이기 때문에 수없이 많이 보았지만, 여태까지 보았던 더티댄싱 중에 그날, 그 숙소에서 보았던 것이 가장 제대로 본 더티 댄싱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아마도 그 공간이 주는 분위기와 알코올 한 모금의 마법이 아니었을까?
순간의 기록.캘러먼 산장이 베이비에게 여름날의 멋진 추억을 만들어줬듯, 이 공간도 내 평범한 일상에 행복이란 색을 덧입혀 주었다. 시간이 지나, 힘든 여름을 견뎌야 하는 날이 온다 해도 이 날의 기억으로 조금은 더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은, 인생의 보조배터리 같은 기억을 만들어 준 이 공간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