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EBS 방학생활을 보았다. 다 보고나서 문제도 풀었다. 그리고 나서 점심을 먹고 동생과 함께 놀다가 학원을 갔다. 돌아오는 길에 떡볶이를 사먹었다. 참 맛있었다."
어린 시절, 방학마다 우리를 괴롭히던 숙제. 그중 원탑은 단연 '일기 쓰기'가 아니었던가. 신나게 노느라 밀려버린 일기를 개학 며칠 전부터 괴로워하며 쓰던 것은 대한민국 초등학생의 통과의례였다. 하지만 만약 자신의 하루를 기록하는 방식이 글로 노트를 채우는 것이 아닌 스티커 붙이기였다면? 매일 다른 색깔과 방식으로 자신만의 일기장을 꾸미는 것이었다면? 코로나19로 인해 야외활동이 제한되는 현 시점에 딱 맞는 취미생활 '다이어리 꾸미기'를 소개한다.
1. '나'만을 위한 기록.
일명 '다꾸'라고 불리는 '다이어리 꾸미기'는 젊은층에선 꽤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취미이다. 다꾸를 즐기는 사람들, 통칭 '다꾸러'들은 다꾸의 가장 큰 매력을 개성이 담긴 기록이라 말하며 그들만의 문화를 구축해 가고 있다. 그들은 각자의 취향에 맞는 스티커와 마스킹테이프로 레이아웃을 꾸미고, 그 속에 본인의 이야기를 채워 넣으며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한다. 어릴 적 담임선생님의 교탁 위에 쌓여있던 획일적인 노트들과는 달리, 다꾸러들의 다이어리는 크기와 종류도 천차만별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양장이나 스프링 제본의 다이어리가 있는가 하면, 속지를 하나씩 빼어 쓸 수 있는 육공다이어리와 손바닥만 한 사이즈의 삼공다이어리도 있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다이어리를 골라 그 속에 하루 하루의 기록을 담으면 어느 새 자신만의 개성 스크랩북이 한 권 완성되는 것이다. 개성으로 완성된 다이어리인 만큼 그 내용도 각양각색이다. 일기에만 국한되지 않고 영화 리뷰, 명대사, 노래 가사, 마음에 새기고 싶은 구절 등등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담을 수 있다. 그야말로 온전한 '나'의 기록이 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검사를 받기 위해 억지로 쓰는 것이 아닌, '나'만을 위한 일상 보관함. 그 보관함을 만드는 일에 한 번 동참해 보는 것은 어떨까?
2. 일기, 시대의 파도에 올라타다.
좌: 꾸미기 과정을 담아 공유한 영상 / 우: 꾸미는 재료 소개 영상
때로는 귀엽게, 때로는 스타일리시하게 개성이 가득 담긴 다이어리들을 보고 있으면 가슴속에서 나도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불쑥 올라온다. 하지만 막상 다이어리 앞에만 앉으면 손이 얼어버린다면? 마음은 굴뚝같은데 저 금손님들처럼 꾸밀 엄두가 나질 않는다면? 그럴 땐 '유선생님'의 도움을 받아보자. 스마트폰의 보급에 따라 언제 어디서나 영상을 찍을 수 있게 된 요즘, '유튜브'는 누군가에게 '유 선생님'이라고 불릴 정도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다꾸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유튜브에 '다이어리 꾸미기'라고 검색을 하면 수많은 다꾸러들의 영상을 볼 수 있다. 본인의 다이어리를 꾸미는 과정을 동영상으로 찍어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이다. 이렇게 공유되는 영상들은 다꾸의 길에 처음 들어선 이들에겐 지도와 같은 역할을 해준다. 스티커를 고르고 붙이는 과정뿐만 아니라 다꾸에 사용되는 재료들을 소개하는, 이른바 '하울 영상'도 많기 때문에, 유튜브는 다꾸 입문자들에겐 좋은 길잡이가 된다.
하지만 유튜브보다 더 다양한 다꾸러들을 만날 수 있는 플랫폼은 따로 있다. 유튜브는 모든 콘텐츠가 영상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편집의 과정이 빠질 수가 없다. 때문에 보다 간편한 방법으로 자신의 다꾸를 공유하고 싶은 사람들은 '인스타그램'을 이용한다. 인스타그램에서 '#다이어리꾸미기' 혹은 '#다꾸' 라는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백만 개가 넘는 게시물들을 만날 수 있다. 이렇게 많은 다꾸들이 게시되는 것은 자신의 기록을 사진 한 장에 담아 널리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편리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인스타그램의 라이브 방송 기능을 이용해 자신이 꾸미는 다이어리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기도 한다. 이 기능은 방송을 시청하는 사람들과 댓글로 소통할 수 있기 때문에 마치 친구와 카페에라도 간 듯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형성해 준다. 코로나 여파로 바깥 출입이 제한되는 현 시점에 알맞는 언택트 다꾸 모임이 되는 것이다.
한때, 자물쇠가 달린 일기장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일기가 비밀의 대명사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SNS와 함께 도래한 공유의 시대에 일기도 발을 들이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그것을 큰 거부감 없이 수용하고 있다. 사실, '일상 브이로그'라는 이름의 영상들이 하루에도 수십 개씩 쏟아지는 시대에 일기라고 공유하지 말란 법은 없다. 꼭 화려하거나 거창한 무언가가 없어도 일상의 소소함을 공유하고 그에 대해 소통하는 일은 늘 즐거운 일이기에.
영상으로든, 사진으로든, 자신의 일상을 많은 이들과 나누는 사람들은 단순히 일상을 공유하는 것을 넘어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라 말한다. 오프라인에서는 모르는 사람들과의 공유이기에 좀 더 편하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의견이다. 물론, 너무 사적인 부분이나 원치 않는 부분까지 공유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부분은 블러 처리, 혹은 스티커 붙이기 등의 기능으로 가려서 공유할 수 있기 때문에 강제 공개의 부담은 없다. 어느 정도 사적인 영역은 유지하며 '공유의 시대'라는 흐름에 발을 맞추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매개 역할을 해주는 것이 바로 다꾸이다.
3. 하나의 산업으로.
'문구'라는 말을 들으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누군가는 연필이나 지우개를 떠올릴 수도 있겠고, 누군가는 형형색색의 볼펜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다꾸러들에게 가장 익숙한 문구는 바로 스티커와 마스킹테이프이다. 요즘은 텐바이텐, 핫트랙스와 같은 대형 문구점은 물론, 개인 사업자들까지 다양한 스티커와 마스킹 테이프를 시중에 내놓으며 문구 시장이 커지는 추세에 있다. 예컨대, 일기를 쓸 때는 날짜와 요일을 쓰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알파벳과 숫자 스티커의 수요가 많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개인 사업자들은 자신만의 폰트를 디자인하여 알파벳과 숫자 스티커로 판매하고, 소비자들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폰트를 찾아 상품을 구매하게 된다.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그 판매는 정기 마켓으로 이어지기도 하며, 그 마켓을 손꼽아 기다리는 다꾸러들 즉, 단골의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그야말로 다꾸가 형성한 하나의 상권이 되는 것이다.
이런 추세에 따라 각양각색의 작품들이 한곳에 모이는 행사도 개최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바로 '서울/부산 일러스트레이션 페어'이다. '서일페' 혹은 '부일페'라는 줄임말로 많이 불리는 이 행사는 2015년에 처음 개최되어 지난 2019년에는 관람객이 8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그만큼 문구류를 찾는 발걸음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아쉽게도 2020년에는 코로나19의 여파로 서일페가 개최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활발했던 온라인 시장을 생각하면 다꾸러들의 문구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뜨거워 보인다.
종이에 나의 일상을 기록하는 작은 일이 이렇게 문구 산업의 새로운 장을 열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점점 활성화되는 중인 이 문구 산업의 미래가 기대된다.
누군가는 다꾸를 하며 자신을 좀 더 알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기록이 가지는 힘이다. 영화 한 편을 봐도 감상에서 그치는 것과 감상을 복기하며 기록으로 남기는 것의 차이는 어마어마한데, 하물며 우리 인생에 대한 기록은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들어낼까? 생에 한 번뿐인 오늘을 다이어리 속에 특별함으로 남겨보자. 오늘이 특별해지면 인생이 특별해질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