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마음이 궁금하다.

by 노정희

어린 시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낯선 곳으로 이사를 왔다. 친척 이모의 도움으로 엄마는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친척 이모는 자식 일이라면 물불 안 가리는, 소위 치맛바람이 센 사람이었다. 음대를 졸업하지 않았으면서도 피아노 학원을 차려 동네 아이들을 가르칠 정도로 수완이 좋은 분이었다. 이모의 첫째 딸은 이모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전교회장도 하고 학교에서 모르는 아이가 없을 정도의 유명했다. 둘째 아들 역시 첫째보다는 덜했지만 이모의 든든한 지원을 받으며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내가 새로 이사한 그곳에서 학교와 반을 배정받았는데, 하필 친척 남자아이와 같은 반이 되었다. 당시 담임 선생님은 촌지를 당연히 요구하는 꼰대 중의 꼰대였는데, 이모가 아들을 위해 촌지를 주었던 것처럼, 그의 친척인 나도 당연히 촌지를 가져올 것이라 기대했던 모양이다.

​촌지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자, 나는 일 년 내내 구박덩이가 되었다. 속이 상해 밥을 안 먹으면 안 먹는다고 혼내고, 수업 중 옷을 잠시 매만졌다고 모두의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분노의 화살은 그 타락한 선생님에게 향했어야 했지만, 엉뚱하게도 그 분노의 방향은 친척 남자아이와 이모에게 향했다.


​이모의 아들은 당연히 그때 유행했던 보이스카웃 활동을 했고, 어느 날 지방에서 캠프를 했다. 혼자 우두커니 있던 내가 안쓰러웠던지, 이모는 나를 데리고 아들의 캠핑장에 갔다. 멋진 보이스카웃 제복을 입고 구령에 맞춰 행진하는 수많은 아이들은 나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사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고, 이상한 감정이 올라왔다. 30년이 훨씬 지난 일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건, 당시의 경험이 나에게 깊은 충격으로 다가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 느꼈던 감정은 열등감이었고, 그 열등감에서 비롯된 수치심이었다. 선의로 나를 데려갔던 그 행동이, 나에게는 평생 친척 이모를 미워하게 만든 기폭제가 되었다. 누군가를 비정상적으로 미워하게 될 때는, 사실 자신의 감정을 먼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제 뉴스공장 독서클럽에서 12.3 관련 도서를 소개하며 정보라 작가의 이야기가 나왔다. 응원봉 시위로 인해 기성세대 중 많은 사람들이 20대 여성들에 대한 놀라움과 감사함을 가지고 있다. 특히 '아재'로 불리는 40, 50대 남성들이 이런 감사함을 표하는 것에 대해, 20대 여성들은 자신들을 낮춰보는 시선으로 해석하여 불쾌감을 느낀다는 취지의 내용이었다. 자신들은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시위에 나선 것인데, '예쁜 아가씨들이 수고롭게도 남들을 위해 희생했다'는 시선이 싫고 불편하다는 것이다. '대견함'이라는 단어는 뭔가 자신들을 낮춰보는 시선처럼 느껴져 싫다는 것이다.

(사실 나도 20대 여성을 허세 가득한 인스타 피드나 올리는 철없는 세대로 인식했더랬다. 아마 그래서 대견함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의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우리 세대와 다른 힘을 느꼈고 이에 대해 상당한 고마움과 놀라움을 느끼고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 같지만, 또 어찌 보면 선의를 왜곡하는 과한 감정적 반응처럼 느껴져 좀 의아했다. 기성세대 특히 남성들의 감사를 날 선 감정으로 받는 그들의 감정이 정확히 무엇인지 무척 궁금했다.


​혹시 경쟁 사회에서 살아가며 느끼는 차별과 소외감으로 촉발된 분노가 모든 남성에게 표출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나의 열등감으로 인한 분노가 엉뚱한 대상에게 표출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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