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감기 몸살에 걸릴 것 같은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를 보았다. 2시간 반 동안 내가 마치 겨울 숲 속에서 조난을 당하고 곰의 습격을 당한 것만 같았다. 왠지 얼굴에 주름이 생기고 흰머리가 날 것 같다.
영화를 보면서 '저 장면은 도대체 어떻게 찍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 영화는 꽤 드문데, 주인공 글래스가 곰의 습격을 받는 장면은 정말 궁금증을 일으킨다. 내가 따뜻한 거실의 안락한 소파에서 영화를 보고 있다는 것이 왠지 미안했다.
영화 속에는 종교적 메시지가 가득하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글래스는 기독교적 고난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이 저렇게까지 고난을 겪을 수 있을까 싶은데, 실화라는 점이 더 놀랍다.
그의 대척점에는 톰 하디가 연기한 피츠제럴드라는 인물이 있다. 자신의 안위와 돈을 위해서는 거짓말과 살인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극단적인 상징처럼 느껴지지만, 현대인의 극단적인 실용주의를 표현한 듯하다. 그의 아버지가 조난당해 어려움을 겪었을 때 신을 만나지만, 아침에 깨어보니 다람쥐였고, 배고픔에 그 다람쥐를 잡아먹었다는 장면이 나온다. 목숨을 위해서는 신도 잡아먹어야 한다는 집념의 사나이인 셈이다. 그가 대단한 악인은 아니라는 점이 흥미롭다. 그는 항상 규칙과 시스템 안에서 거래하고 행동하지만, 필요시에는 그것을 어기는 것에 전혀 거리낌이 없다. 필요라는 것 그 자체가 그에게는 종교인 것이다.
글래스는 목숨과도 같은 아들이 있는데, 그 아들은 고의와 실수 사이에서 피츠제럴드에게 죽임을 당한다. 아들의 복수를 위해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는 듯한 글래스의 생존 이야기에 영화는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다. 그를 구해주는 인디언이 등장하는데, 아무런 조건 없이 글래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치료해 준다. 그 마저도 백인들에게 가족들을 잃었지만, 자신은 그저 길을 갈 뿐이라고 말한다. 복수는 신의 것이므로. 영화의 가장 주된 메시지가 그 인물을 통해 표현된다.
글래스를 치료해 주고 밝아온 아침, 그는 또 다른 백인들에게 목숨을 잃는다. 그의 목에는 'On est tous des sauvages (우리 모두는 야만인이다)'라는 팻말이 걸린 채로. 아이러니하다. 신의 메시지를 가장 잘 따르는 인물이지만, 야만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영화는 아름다운 자연을 보여주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자연은 인간사에 무심하면서도 잔인할 정도로 아름답다. 늑대에게 잡아먹히는 물소를 보여주며, 자연 속의 약육강식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그게 세상의 이치라는 듯이. 복수라는 감정은 피츠제럴드에게 의아한 감정이다. "겨우 복수 때문에 그 고생을 하면서 여기까지 찾아왔냐"는 그의 대사로 이를 알 수 있다. 감정이 없는 피츠제럴드처럼, 감정이 없는 자연은 아름답지만 인간사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영화는 부감샷보다는 의도적으로 땅에서 하늘로 올려 찍는 장면을 많이 사용한다. 위압적인 자연을 표현하고자 한 듯하다. 자연은 곧 신이라는 의미로, 압도적인 강함을 상징한다. 또한, 과한 클로즈업을 많이 사용하는 데, 관객이 인물에게 감정을 쉽게 이입할 수 있게 만들고, 영화를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게 만들겠다는 감독의 의도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