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쉐임>을 보고

금기와 수치심, 그 운명의 굴레에 대하여

by 노정희


​금기란 무엇인가. 그것은 한 문화권 안의 인간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무언가다. 내재된 금기로 인해 사람들은 다양한 부정적 감정을 느낀다. 금기를 어겼을 때 인간은 분노와 혐오를 느끼고, 남들이 알게 될까 봐 수치심을 느끼며, 어긴 사람들 사이에서만 공유하는 은밀한 비밀이 생긴다.

​영화 <쉐임>은 수치심에 대한 이야기다. 또한 금기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며, 자신에게 내린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는 치열한 투쟁기이기도 하다. 영화의 표면은 성공한 뉴요커의 은밀한 이중생활을 다루는 듯 보이지만, 그 속은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굴레에서 발버둥 치는 불쌍한 남매의 비극을 담고 있다.

​뉴욕의 잘 나가는 화이트칼라 브랜든은 멋진 직장과 세련된 아파트에서 단정한 생활을 유지한다. 하지만 그의 사생활은 도색 잡지와 포르노, 콜걸로 둘러싸여 있다. 겉으로는 슈트 핏이 근사한 훤칠한 도시 남자지만, 그의 내면은 황폐하기 그지없다. 동생 시시가 그의 삶에 침범하기 전까지 브랜든의 이중생활은 그럭저럭 흘러가는 듯 보였다. 그러나 시시는 오빠와 다르다. 그녀는 영화 속 대사처럼 ‘엉망진창’이다. 항상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며, 관계를 맺은 남성들에게 집착하는 결핍 가득한 존재다.

​어느 날, 가수인 시시는 바에서 노래를 부른다. 바람둥이인 브랜든의 상사와 브랜든은 그녀의 무대를 지켜본다. 그녀가 부르는 노래는 뉴욕에서의 성공과 희망을 노래하는 흥겨운 곡 ‘New York, New York’이지만, 그녀는 이를 세상에서 가장 처연하게 부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브랜든은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린다.

​영화는 오이디푸스 신화의 또 다른 변주처럼 읽힌다. 우리 문화권에서 금기시하는 근친의 문제를 건드린다는 점에서 영화 <올드보이>를 연상시키지만, 접근 방식은 확연히 다르다. <쉐임>은 어린 시절 남매에게 어떤 구체적인 사건이 있었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남매 모두에게 나타나는 치명적인 결핍을 통해 그들의 양육 환경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음을 짐작하게 할 뿐이다. 그 상처는 남매 사이에 금기를 넘어선 기형적인 애착 관계를 만들었다. 시시의 손목에 남은 수많은 자해 흔적과 그녀의 슬픈 목소리에 눈물 흘리는 냉정한 브랜든의 모습은 이를 뒷받침한다. 시시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 듯 오빠에게 남매 이상의 무언가를 끊임없이 요구한다. 반면 그 금기에서 벗어나고픈 브랜든은 지독한 성 중독에 탐닉하며 발버둥 치지만, 그럴수록 그의 영혼은 속절없이 시들어간다.

​결국 브랜든이 자신을 거부하자 시시는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듯 다시 한번 자살을 시도한다. 그 파국을 목격한 브랜든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 앞에 망연자실한 채, 비를 맞으며 울부짖는다. 그것은 가혹한 운명에 대한 완전한 굴복이었다.


​금기란 대체 무엇이길래?

이 남매의 고통이 참 안쓰러면서도 기이하게 느껴진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브랜든은 지하철에서 초반에 마주쳤던 여성을 다시 만난다. 처음 만났을 때 그는 그녀의 결혼반지를 보고도 멈추지 않고 추격하듯 뒤를 쫓았었다. 하지만 다시 만난 지하철 안에서, 결혼반지를 낀 그녀가 오히려 노골적으로 유혹의 눈길을 보내자 브랜든은 지독한 증오의 눈빛으로 응수한다. 자신에게는 끔찍한 형벌인 금기를 장난처럼 가볍게 넘나드는 타인들을 향해, 그는 혐오 섞인 시선을 던지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굴복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비극을 누군가는 유희로 즐기는 현실 앞에서, 그는 그들을 증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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