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님들의 행진과 먹고사니즘의 비극
------ 영화의 스포를 잔뜩 포함하고 있습니다. ------------------
연상호 감독은 <사이비>와 <부산행> 이후 딱히 만족스러운 작품은 없었으나, 이번 신작 <얼굴>은 상당히 만족스럽다. 저예산 영화라는 한계를 대사를 통한 전개 방식으로 영리하게 돌파했으며, 그 화법 또한 영화의 주제 의식과 매우 적절하게 맞닿아 있다.
아름다움과 추함의 경계선은 누구의 시선을 기준으로 가를 것인가. 결국 나 자신이 그 기준이 되어야 한다. 영화 <얼굴>은 스스로 기준이 되지 못한 한 인간이 맞이하는 지독한 비극을 다룬다. 그런 면에서 영화적 장치로 도입된 '시각장애인'이라는 설정은 매우 탁월하다. 극 중 아버지는 육체적 장애를 넘어, 극이 진행될수록 내면 깊숙한 곳까지 시력이 마비된 인물로 묘사된다.
그가 겪어온 역경의 삶은 우리네 부모 세대를 투영하고 있어 뼈아프게 다가온다. 독재 시대를 관통하며 강자에게 길들여진 약자들의 삶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서로 연대해도 모자랄 처지에 강자의 시선을 내재화하여 서로를 재단하는 약자 근성은 참으로 비극적이다.
아버지(권해효 분)는 이러한 세태를 가장 잘 나타내는 캐릭터다. 서로를 보듬어야 할 연대의 손길 속에서 강자의 잣대로 규정된 '추함'을 발견하는 순간, 그가 느끼는 모멸감은 평생 강자들에게 당하며 쌓여온 피해의식의 발로다. 피해의식에 잠식당한 인간은 자신에게 찾아온 소중한 관계의 내면적 아름다움조차 알아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매우 의미심장하다. 그는 육체적 시각 장애를 넘어 내면적 시각 장애를 갖게 된 것이다. 없던 시절, 먹고사는 것이 최고의 덕목이 되던 시대, 그는 아내에게는 또 다른 방식의 강자 위치를 갖게 되고, 그에게 가했던 강자의 폭력을 그대로 아내에게 답습한다.
(약자를 보는 감독의 시선이 참 날카롭다 못해 저릿하다.)
여러 차례의 인터뷰를 통해 드러나는 아들(박정민 분)의 마지막 선택 또한 흥미롭다. 이는 부모 세대가 내외적으로 모든 것을 갈아 넣은 덕분에 이룩한 풍요를 그저 물려받기만 한 우리 세대의 자화상 같기도 하다. 부자지간의 다툼 도중 아버지가 내뱉은 "기생충"이라는 말은 부모 세대가 바라보는 자식 세대의 부분적 단면일지 모른다. 정신적 성숙은 뒤로한 채 치열하게 생존해 온 그들의 삶을 아들이 단죄하려 들었을 때, 아버지는 견딜 수 없는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타당하면서도 한편으론 어처구니없는 그 말, '기생충'
"기생충"이라는 말은 우리 세대를 보는 보모세대의 진심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든다. (어쩌면 이것도 피해의식일까?)
결국 아들은 아버지의 명예와 자신의 안락함을 지키기 위해 진실을 왜곡하기로 한다. 이는 아버지 세대의 방식과 닮아 있는 찌질한 타협이다. 아버지는 자신이 저지른 과오를 직시하지 않기 위해, 아내이자 아들의 어머니를 반드시 '추녀'이자 '괴물'로 남겨두어야만 했다. 진실이 무엇인지 궁금해하지도 않은 채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