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7세 때 일이다. 태권도 학원을 마치고 아이는 울면서 들어왔다.
아이는 태권도 친구 H 한테 맞았다고 했다. 자기를 눕혀놓고 그 위에서 발로 밟았다고 했다.
심지어 그 H라는 아이는 선생님들이 볼 수 없는 장소로 끌고 가서 때렸다고 했다. 그리고 어른들에게 말하면 더 때리겠다고 까지 했다.
겨우 일곱 살짜리 아이가 말이다.
아이는 크게 다치지는 않았으나 많이 놀란 듯 보였다.
이튿날, 태권도 관장님께 사건에 대하여 물어봤고 역시 아무것도 모르고 계셨다.
관장님께서 나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바로 한 아이를 지목하셨다. 그리고 그 아이와 확인하시니 본인이 때렸다고 시인했다고 하셨다.
그 H라는 아이는 다른 아이들도 많이 때려서 태권도장에서도 골치가 아프다고 하셨다.
H는 항상 무표정하고 말수가 없었다.
친구들과 재잘거리며 다니는 또래 아이들과 달리 H는 언제나 혼자 다녔다.
가끔씩 아는 어른들과 눈이 마주치면 인사를 하기는커녕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아이였다.
우리 아이가 크게 다친 건 아니라, 굳이 H의 엄마에게까지 전화를 해 사과를 받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사실 이런 일이 처음이라 뭘 어떻게 해야 맞는 건지 몰랐다.
다만, 그냥 덮어두기엔 좀 억울하고 아이에게 어떻게든 도움을 줘야 할 것 같았다.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 선생님께 문의를 드렸다.
선생님께서는 그렇지 않아도 옆 반에 있던 H가 우리 아이 반으로 들어오자, 아이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흐르는 것을 보고 뭔가 사건이 있었겠구나라고 짐작하셨다고 했다.
이런 사건은 그냥 덮으면 아이들에게 서로 좋지 않으니 사과를 하고 받는 공식적인 자리를 유치원에서 마련해 주시기로 하셨다.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우리 아이는 사과를 받았고 H도 다시는 우리 아이를 때리지 않기로 약속했다고 했다.
그다음 날, 한통의 전화가 왔다. H의 엄마였다.
내가 맞은 것처럼 가슴이 요동치고 떨려왔다. 그 아이의 엄마는 매우 능숙한 솜씨로 차를 마시자며 자리를 마련했고 나는 내키지 않았지만 나갔다.
본인의 아이가 나의 아이를 때린 부분에 대하여 너무 미안하다고 사과의 사과를 거듭했다.
그리고 이런 사건이 한두 번이 아니라며 하소연을 했다.
어차피 다 같이 아이 키우는 엄마들인데 너의 자식, 나의 자식 따지지 말고 함께 키우는 마음으로 너그러이 용서해달라고 했다.
‘나의 자식이 맞았고, 너의 자식이 때렸는데 왜 다 같이 자식 키우는 엄마로 퉁치는 거냐? 그게 당신 입으로 할 소리냐?’
조금 짜증이 났으나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그렇게 서로 이해하며 살자고 약속까지 하며 집으로 왔다.
사실 맞는 말이긴 했으나 그런 말을 뻔뻔스럽게 하는 그녀가 싫고 미웠다.
1학년이 되자, 하필 H가 같은 반이 되었다.
반대표 엄마를 뽑는 날, 다들 귀찮은지 아무도 손을 들지 않고 서로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를 눈치챈 H의 엄마는 반대표를 자청해서 했다.
그녀는 반 아이들의 생일을 분기별로 모아 생일잔치를 해주자는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성가신 일이고 불만이 나오기 쉬운 일이라 엄마들 사이에서 상당한 반대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사람들을 일일이 설득을 하여 생일잔치 프로젝트를 기어코 성사시켰다.
분기별로 태권도장을 빌리거나, 키즈 카페에 모여서 생일잔치를 했고 반응이 아주 좋았다.
H의 엄마는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고 싶었던 것 같았다.
막상 그런 자리가 마련되어도 H는 역시 혼자 놀았고 가끔씩 다른 아이들을 때렸다.
그녀의 마음이 아파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1년 내내 포기하지 않고 자리를 마련했다.
참 고단해 보였다. 엄마의 잘못도 아닌데 아이가 사고를 치면 엄마는 언제나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를 한다.
영화 [케빈에 대하여]는 사이코패스 아들을 둔 한 어머니의 이야기다.
케빈은 고등학교 강당의 문을 잠그고 학생들을 집단학살하는 엽기적인 사건을 벌인다.
그 사건 이후, 그녀는 아들의 죄를 대신하여 마냥 사냥을 당한다.
사람들이 그녀의 하얀색 집에 빨간색 페인트로 범벅을 해놓아도, 지나는 길에 따귀를 때려도 그녀는 항변을 하지 않고 모든 걸 받아들인다.
그것이 그녀만의 속죄 방식인 냥.
그녀는 텅 빈 눈으로 생각에 생각을 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케빈의 시작부터 말이다.
남들이 행복에 겨워하는 임신기간에 불룩한 배를 보며 한숨을 지었던 일,
아이의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자 유모차를 끌고 시끄러운 공사장 옆에서 숨을 돌렸던 일,
아이가 지속적인 적대감을 보이자 네가 없었던 시절이 좋았다며 아이에게 막말을 퍼부었던 일,
아이가 일부러 기저귀에 똥을 싼 것에 격분해 아이를 집어던져 팔을 부러뜨렸던 일,
자신이 좋아하는 취향으로 고생 고생해서 만들어 놓은 방안을 아이가 물감 총으로 다 망쳐버리자 보는 앞에서 물감 총을 밟아 으깨버린 일,
자신의 지난 잘못을 반성하는 듯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다.
2년 동안이나 교도소에 있는 케빈에게 찾아가, 도대체 왜 그런 일을 벌인 것인지 진심을 다해 묻는다.
평생 동안 엄마에 대한 적의로 가득 찼던 케빈도 끝내 “이유를 알 것도 같았는데, 정말로 이유를 모르겠다”라고 울음을 터뜨린다.
사이코패스는 태어나는 것인데, 그런 아들을 두었다고 사람들에게 온갖 멸시를 당하는 어머니의 삶이 안타까웠다.
복불복처럼 얻어지는 불행인데 그녀를 탓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하지만, 오은영 박사의 프로그램들을 보면 아이의 문제행동은 부모의 잘못된 양육방식에 기인된 경우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 [케빈에 대하여]에서 이상행동을 보이는 어린아이를 관찰하고 교정해줄 수 있는 기회를 끝끝내 스스로 놓쳐버린다.
그것도 모자라 아이와 똑같이 적대감 섞인 행동을 보인다.
(나라고 그런 아이를 초인적인 인내로 다 받아 주었을까? 솔직히 자신 없다.)
또한 부부의 이혼 문제가 케빈 때문이라고 믿게 하는 철부지 같은 행동을 저지른다.
그런 예민한 기질의 아이(케빈이라는 아이가 겨우 예민한 아이라고 말하긴 좀 어려울 것 같으나)를 키우는 건 부모의 삶에서 엄청난 시련이다.
하지만, H의 엄마처럼, 아이를 교정해 주기 위해 부단한 노력이 있었다면 그런 엄청난 사건을 방지할 수도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라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참고, H를 사이코패스로 비유한 건 절대 아니다. 예민한 아이의 한 예로 들었으니 오해 말아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