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읽어도 꼭 사이코 패스니 살인사건이니 이런 소재의 작품을 좋아하고, 영화를 봐도 법정 장르물이나 심리스릴러물을 좋아한다. 이런 취향의 내가 동화작가를 꿈꾼다는 것이 좀 웃긴다. 사실 동화작가를 꼭 하고 싶다기보다 글은 쓰고 싶은데 에세이류는 왠지 나의 일상과 내면이 다 까발려지는 느낌이라 뭔가 부담스럽다. 쓸데없는 스스로의 검열로 인해 소재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고, 또 언제까지 남의 작품만 보고 감탄만 하고 있는 게 뭔가 아쉽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에세이류보다는 창작 글을 써보고 싶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동화작가로 시작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를 보고 잠시 글을 쓰지 않게 되었다. 작가들의 작가라고 칭송받는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다. 드라마를 보며 내 허접한 글이 더욱 허접하게 느껴졌다. 글을 쓰려면 저 정도는 써야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글이 쓰기가 싫어졌다. 그리고 글을 쓴다는 건 사실 좀 귀찮은 일이기도 하다. 특별한 동기부여가 없으면 책상에 앉아 몇 시간씩 키보드를 두드리기가 쉽지가 않다.
수업 중 선생님께서는 글을 쓰다 보면 반드시 자신의 어린 시절과 만나게 되니 그 준비를 해보시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자신도 글을 쓸 때 어린 시절과 만나지 않으려고 노력했었던 적이 있었지만 글을 계속 쓰다 보면 계속 피할 수만은 없다고 하셨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지만 곧 나도 나의 어린 시절과 만나게 되었다.
글을 쓸 때 왠지 나의 어린 시절의 어두운 면을 쓰기 힘들다. 그 어두운 면을 마주하는 순간 나는 그 당시 유년시절의 나로 돌아간다. 40대 중반의 삶에 익숙한 씩씩한 아줌마가 아닌 잔뜩 움츠러든 소심한 어린 여자아이가 된다. 그런 면을 내어 보이는 것이 싫어 글을 쓸 때도 굳이 밝고 재미있는 면의 소재만 사용하여 글을 썼다.
오늘 수업에서는 자신이 평소에 좋아하는 동화를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갖었다. 나는 몇 년 전 아이와 함께 도서관에 왔다 발견한 저학년 동화 "나쁜 엄마"를 소개했다.
뺑소니로 아버지를 잃고 자신과 언니를 먹여 살리기 위해 시장 노점에서 생선장사를 하는 무뚝뚝한 엄마가 싫다는 어린 소녀의 이야기다. 어린이날에도 비 오는 날에도 어린 소녀의 엄마는 자식들과 함께 하지 못한다. 아이는 그런 엄마가 싫은 거다.
어른의 시점에서는 철없는 것이라며 "쯧쯧" 하고 혀를 쉽게 내두를 수 있다. 하지만 그 아이의 입장에서는 그게 또 그런 게 아니다. 생존을 위한 밥벌이의 고단함을 잘 알지도 못하고 언니 옷을 항상 물려 입어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싫은 것이다. 어린이날 친구들은 엄마 아빠와 함께 놀이공원에 놀러 가는데 자신은 그러지 못하고 그런 마음을 살뜰히 이해해주지 않는 엄마가 미운 것이다. 그런 마음은 몰라주고 어른들은 힘든 엄마에게 잘해주라고만 한다. 아이도 알지만 자신의 처지가 불만스러운 건 어쩔 수 없다.
또 비 오는 날 다른 아이들은 엄마가, 혹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모두 우산을 들고 학교에 찾아온다. 마중 나올 사람이 없는 소녀만 비가 그칠 때까지 학교에서 덩그러니 기다린다. 그런 엄마가 원망스러워 아이는 엄마가 있는 시장으로 간다. 아이는 엄마가 진상 손님과 옥신각신하며 싸우는 모습을 지켜본다. 헤진 속옷을 기워입고 생선 손질로 거칠어진 엄마의 손등을 보며 자신의 철없음을 반성하며 동화는 끝이 난다.
동화를 소개하면서 나도 모르게 그 아이에게 감정이입을 해버렸다. 또 나의 어린 시절의 모습과 좀 흡사한 면이 있다고 발표하면서 갑자기 울컥해버렸다. 내가 말을 잊지 못하자 선생님은 서둘러 다른 사람에게 발언 기회를 내어 주셨다. 다행히 울지 않았지만 혼자 주책맞게 굳이 나의 구질구질한 어린 시절을 말해버린 것 같아 창피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서둘러 집에 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나는 현재의 나로 돌아오지 못하고 어린 시절의 감정으로 머물러 있어 참 힘들었다. 이런 감정을 글로써 배출해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오래간만에 서둘러 책상에 앉았다.
우리 엄마는 생선장사를 하지는 않았지만 동화 속의 엄마처럼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자식들의 감정을 돌볼 겨를은 없었다.
아버지의 죽음과 남편의 죽음.
어떤 슬픔이 더 큰지 비교할 수는 없지만 남편의 죽음으로 인하여 삶의 무게에 허덕이는 엄마 앞에서 어린 시절 나는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슬픔과 결핍을 내비칠 수는 없었다. 왠지 그래서는 안 되는 것 같았다. 무릎이 헤진 내복을 입는 것이 부끄러웠지만 엄마에게 싫다고 할 수가 없었다. 남들처럼 놀이공원에 가고 싶어 엄마를 졸라 가봤지만 엄마, 언니, 나 이렇게 3명이 가는 나들이는 즐겁지 않았다. 뭔가 초라하고 어색했다. 그래서 그 뒤로는 굳이 엄마에게 어디에 가고 싶다고 말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나이가 들고 대학을 가고 초라했던 어린 시절을 벗어날 수 있었다. 또 언니가 결혼을 해서 가족을 꾸리고 형부와 조카들이 생기면서 항상 뭔가 부족했던 것이 채워지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한 참 뒤 내가 가정을 이루고 아이가 생기면서 결핍이 가득했던 어린 시절의 나를 완전히 잊었다.
오늘 잊어버렸던 기억과 다시 마주했다. 돌아가고 싶지 않은 어린 시절로 돌아가버린 시간이었다. 상실과 결핍으로 인한 슬픈 감정이 차올랐지만 글이라는 대나무 숲에 나의 해묵은 감정을 내뱉을 수 있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