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소개로 읽은 동화책 "내 이름은 백석".
유은실 작가의 아주 짧은 동화다.
시장 통에서 제일가는 닭집을 운영하는 백석이네 아버지는 별명이 닭대가리다.
원래 "큰거리 닭집"이라는 간판을 사용했는데, 큰거리보다는 한자를 사용해서 "대거리 닭집"으로 이름을 바꾼 다음, 시장 통 사람들은 그를 닭대거리, 닭대가리라고 불렀다. 닭대가리라고 부르면 아버지는 "꼬끼오"라고 재미있게 대답하는 그런 사람이다.
어느 날, 백석이는 학교에서 그의 이름에 대해 선생님께 칭찬을 받는다. "백석이 아버지가 천재 시인 백석을 좋아하셔서 이름을 백석으로 지어주셨구나. 정말 좋겠다." 라며 칭찬을 해주신다. 백석의 아버지는 시인 백석이 누군지도 모르지만, 그런 칭찬을 받았다면 그의 시를 한편 외워보자며 제안한다.
백석 시인의 시 중에 나타샤라는 이름의 여인이 나오는데, 그녀의 국적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미국여자일 것이다. 소련여자일 것이다.
백석 엄마는 나타샤가 소련여자라고 우기자, 옆집 가게 아저씨가 맞다며, 나타샤는 러시아여자일 것이라고 말한다.
소련이 러시아로 이름이 바뀌었는지 모르고 있던 백석 아버지는 백석 엄마에게 "거봐, 소련이 아니라 러시아라잖아!"라며 면박을 준다. 옆에서 듣던, 옆집 가게 아저씨는 "소련이 러시아가 된 거잖아." 그것도 모르고 있었냐며 백석 아버지를 닭대가리라며 놀린다. 얼굴이 붉어진 백석 아버지는 전처럼 "꼬끼오"라고 외치지 못한다.
그리고, 그날 오후, 아들 백석에게 나중에 닭집을 하더래도 나라 이름 바뀐 것 정도는 알고 살라고 한다. 또 공부 잘하는 친구 녀석 하나 정도는 옆에 두고 살으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하지만, 백석의 아버지는 닭에 대해서는 제일가는 전문가다. 닭의 목이 닭의 내장보다 빨리 상해서 닭의 목이 달려있는 닭을 사야 싱싱한 것이라는 것도 같이 알려준다.
까짓꺼, 소련이 러시아가 된 걸 좀 모르면 어떠한가. 백석의 아버지는 누가 뭐래도 닭 전문가인데 말이다.
20년 전, 친했던 동료 직원에게 큰 실수를 한 적이 있다.
말장난하고 놀고 있던 도중, 그녀는 어떤 영어단어를 전혀 다르게 발음한 적이 있었다. (정확히 어떤 단어였는지는 기억이 나지않는다.)
예를 들어, danger (데인져)라는 단어를 "단거"라고 발음하는 것처럼
나는 당연히 장난하는 줄 알고 그게 뭐냐고 크게 웃었더랬다. 얼굴이 붉어진 그녀는 갑자기 새초롬해졌다.
뭔가 내가 큰 실수를 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나는 그녀가 영어가 약한 줄은 결단코 몰랐다. 한 순간의 실수로 좋은 친구로 남을 수 있던 그녀를 영영 잃어버리는 순간이 되었다.
내 딴에는 정말 악의 없는 장난이었지만, 무심코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사건이었다.
백석의 아버지처럼 단단한 사람도 약한 부분이 존재한다. 그 약한 부분이 건드려지면 조개처럼 마음의 문을 꼭 닫아버리는 것이 인간인가 보다.
짧은 단편을 읽고 20년 전 멀어져 버린 동료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