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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소리 그만!

by 노정희

요즘 아이에게 잔소리가 늘어나고 있다.


아이는 다니던 학원을 그만두고, 도서관에서 혼자 공부한 지 대략 6개월 정도 되어 가고 있다. 공부는 자기 주도적으로 하는 것이 제일이라는 생각에, 수학 진도는 얼마나 나갔는지? 영어 공부는 어떤 식으로 하는지? 궁금했지만 일일이 확인하지 않았다. 공부는 아이가 오너쉽을 가지고 해야 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에서였다. 엄마가 일일이 물어보고, 공부해야 할 분량을 정해주면 그건 오롯이 아이의 의지에 따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동기가 약해질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방학 동안 아이는 꾸준히 혼자서 하루에 할 분량을 정해 공부해 나갔고, 문제집도 스스로 고르게 하였다. 그런 아이가 꽤나 기특해 칭찬을 많이 해주었다.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하니, 뭔가 좀 달라졌다.

하루 종일 수업받고 바로 도서관에 가면 왠지 집중이 잘 안 된다고 했다. 그럼, 집에 잠깐 와서 쉬고, 자전거 좀 탄 후에 도서관에 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고, 아이도 좋다고 했다.


역시 집으로 오는 게 문제였다. 집으로 오니 다시 밖에 나가기 싫은지, 누워서 핸드폰을 보며 뒹굴뒹굴 시간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나도 그런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뒹굴거리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스멀스멀 잔소리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하면 쿨한 엄마가 되지 못할 까봐, 본심은 숨긴 채 다른 것들에 잔소리를 시작했다.


운동화 밟아 신지 마라!

얼굴에 로션 발라라!

옷 갈아입고 속옷 바로 빨래통에 넣어라!

반찬 골고루 먹어라!


목소리가 곱게 나가지 않는다. 내심 빨리 가서 공부해라!라는 말이 하고 싶은데, 그 말을 하지 못하니 다른 핑계로 아이를 갈구게 되었다. 엄마의 표정과 목소리 톤이 곱지 못하니, 사춘기 아이는 아이대로 정색하며 대꾸하거나 내 말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이가 무조건 어른 말 잘 듣는 사람으로 커가는 걸 원치 않는다. 요즘 어른말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한 사람들이 지능적으로 치는 많은 사고들을 목도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들이 끼치는 해악이 소위 불량배들의 해악보다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정의롭지 못하는 짓은 하지 않는 어른으로 커 가길 바란다.


최근 김누리 교수는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이 이런 괴물들을 만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독한 파시즘을 경험했던 독일은 공교육과정에서 경쟁하는 것을 법적으로 금지시킨다고 한단다. 잘 난 사람과 못 난 사람이 경쟁 시스템 안에서 나뉘고, 잘 난 사람들이 못 난 사람들을 지배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는 것이, 경쟁시스템 안에서는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란다. (김누리 교수의 주장을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다.) 독일은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했는지 똑똑히 경험했기 때문에 경쟁을 공교육 안에서 몰아냈다고 한다.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은 경쟁이 근간이다. 요즘도 그러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내가 중고등시절, 공부를 잘하는 것은 일종의 권력이었다.

또, 누가 뭐래도 대입시험 자체는 경쟁의 끝판왕이다. 좋은 대학은 나와야 그나마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장강명 작가의 댓글부대라는 작품을 읽었다. 2015년도 쓰인 작품인데도 최근 사회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한 것처럼 느껴졌다.

최근 십 대 아이들의 우경화 경향은 386세대 부모에 대한 반발심이 그 원인이라고 꼬집는다. 사회적인 문제에는 진보적인 의견을 내지만 막상 실제 삶에서는 꼰대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우리 세대에 대한 반발심이 그 원인이라니 참 반성할 일이다.


매일매일 쏟아지는 뉴스와 다양한 주장들로 인하여 이래 저래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무조건 공부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이놈의 잔소리는 도대체 멈춰지지 않는다.

친절한 금자 씨는 말한다.


"너나 잘하세요!" 나보고 하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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