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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어서"를 읽고

by 노정희

나는 도서관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책을 아주 많이 읽는 것은 아니지만, 도서관에 가면 마음이 편해진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북카페에 가면 사족을 못 쓴다.

귀에 은은하게 들리는 음악소리, (보통 북카페에서는 재즈음악을 들을 수 있다. )

고소한 커피 향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북카페에서는 친구들과 수다를 떨 수 없지만, 유유자적 좋아하는 책을 읽을 수 있어 좋다. 조금 읽다가, 잘 안 읽히는 책은 금방 던져버리고, 새로운 책을 고를 수도 있고, 나에게 이 만한 놀이터가 없다.


이런 소소한 행복으로 인생을 채워나갈 수 있어 너무 좋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육아를 하면서 나를 잃어버리는 시간을 거쳤다. 만나는 사람들은 아이 친구 엄마들이 전부였던 시절이 있었다. 내 이름을 잃어버리고, 누구의 엄마로 불리는 시간들이 당연한 듯하면서도 낯설었다. 아이를 같이 키운다는 공감대 하나로 서로 맞지 않는 사람들과 참 많이도 돌아다녔고, 갈등도 많이 겪었다. (동네사람들과 갈등을 겪으면 여러 가지로 참 불편하다.)

그런 시간들이 길어지면서 조금 지쳐갔었던 것 같다.


이제, 어느덧 아이는 중학교에 입학했다.

놀이터 지킴이를 졸업한 지는 꽤 오래되었다. 이제 교육정보를 나누는 몇몇의 코드 맞는 엄마들과만 한 달에 한두 번 함께 하곤 한다.

아이가 스스로 해내는 일이 많아질수록 나는 시간이 많아졌다.

시간이 많아지면서 내 나이도 많아졌다. 누가 나이를 물으면 내가 몇 살인지도 한 번에 입에서 나오지 않는다.

이제 곧 오십이라는 데, 믿기지 않는다. (아직 몇 년 남았다.)


오늘, 도서관에 와서 장강명 작가의 "한국이 싫어서"라는 소설을 읽었다.

무슨 글을 이렇게 재미나게 쓸까? 질투가 느껴질 정도로 한 호흡에 술술 읽힌다.


항상 바쁘게 돌아가던 직장인 시절, 내 시간을 돈과 교환하는 느낌을 아주 강렬하게 받았더랬다. (작품 속의 계나가 겪었던 것처럼.)

내가 운이 좋았던 건지, 나는 그리 바쁜 회사에서 일을 한 적이 많지는 않다.

너무 바쁜 회사에서는 너무 바빠서, 잡생각이 나지 않는 장점이 있었으나 쥐꼬리만 한 월급에 너무 혹사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강했다.

나머지 널널한 회사에서는 일이 너무 한가해서, 잡생각이 많았다. 회사의 매출이 떨어지면서 잘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 하루 종일 상사의 눈치를 보면서 인터넷 서핑을 하던 날도 수두룩 했다. 그때는 날도 좋은데, 무료함에 그냥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다는 충동이 강하게 들었다.

바쁘면 바쁜 대로, 한가하면 한가한 대로 회사라는 곳은 힘들었다.


지금은, 시간이 많다. 너무 많다.

운이 좋아서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도 아니고, 육아에 전념해야 하는 시간도 지났다.

생산적이지 못한 나의 삶에 뭔가 불안을 느꼈던 시간도 지났다.


지금은 편의점 커피 한 잔 사들고, 도서관에 가서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가끔, 글을 너무 잘 쓰는 작가들의 책을 읽으며 묘한 질투를 느끼긴 하지만 이 시간들이 너무 좋다.

오마카세에 가지 못해도, 럭셔리한 해외여행을 못해도, 명품백을 들지 못해도.

에코백하나 달랑 들고 도서관으로 향하는 시간이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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