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랑켄슈타인"을 보고,
몇 년 전 유튜브에서 술 취한 남성이 지하철역에서 소리를 지르며 난동을 부리는 장면을 보았다. 늦은 시간이라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무서워하며 그를 피했고, 경찰이 와서 상황이 정리하길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아마, 나라도 그랬을 것 같다.
그러다 어느 젊은 남성이 조용히 다가가 난동을 부리고 있는 술 취한 남성을 안아주었다. 술 취한 남성은 잠시 거칠게 몸부림치다 젊은 청년을 잡고 엉엉 울고 마는 장면이었다. 짧은 영상이었지만 울컥 눈물을 흘렸다.
넷플릭스 영화 "프랑켄슈타인"은 애정에 대한 슬픈 이야기다.
기에르모 델 토르 감독의 신작이다. 그간 그의 영화를 썩 좋아하지 않았던 터라 별 기대 없이 영화를 보았고, 중반까지는 자다 깨다를 반복 하며 지루하게 시청했다.
(참고로 영화는 창조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시점과 그의 피조물의 시점으로 양분된다.)
영화 중반부, 피조물(일명 괴물)의 시점으로 영화가 진행되면서 나에게는 너무 아름답게 다가왔다. 괴팍한 미친 과학자가 욕망과 광기로 만들어낸 괴물 같은 존재이지만, 그의 내면은 갓난아이의 순수함으로 가득하다. 괴물은 자신의 창조자 빅터의 이름을 애달프게 부르지만 창조자(또는 그의 아버지)에게는 실패한 실험체 괴물의 포효로 밖에 들리지 않음을 깨닫고 슬퍼한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낙엽을 소중히 간직해서 선물할 줄 알며, 숲 속 사슴에게 산나무 열매를 먹여주며 순수한 미소를 지을 줄 알며, 자신을 따뜻하게 대하는 눈먼 이에게 울타리를 지어주고, 아름다운 글을 읽어주는 이가 사람들 눈에는 그저 제거해야 하는 괴물일 뿐이다.
겉모습은 흉측한 괴물이지만 세상을 느끼고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는 따뜻함을 갖은 그가 괴물인 것인가? 아니면 탐욕으로 금지된 선을 넘고야 마는 인간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인가? 답은 자명하다.
영화 속 빅터의 모습에서 경쟁사회에 상처를 입고 자신의 아이(창조물)를 경쟁력 있는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애정 어린 시선을 잊은 채 아이를 몰아세우는 많은 부모(나를 포함한)의 모습을 본다. 자신이 낳았으니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하는지, 사랑이라는 이름의 과도한 통제와 거친 억압을 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빅터에게 보았다.
그런 실수투성이 미성숙한 부모들이지만, 빅터의 이름을 끝없이 불렀던 괴물의 순수한 마음처럼 우리의 아이들도 한없이 우리들을 사랑의 눈초리로 바라본다.(어린 시절까지만) 이후 매서운 통제와 질책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그 순수한 눈초리를 거두고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처럼 분노와 증오로 세상을 바라보게 될 수도 있다.
지하철역에서, 누군가에게 상처받아 세상에 대한 원망이 가득 차 난동을 부리던 취객을 조용하게 만든 힘은 이웃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었다.
세상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살아야겠다.
특히 우리 아이들은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