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하는 찬란한 영웅

"F1 더 무비"를 보고

by 노정희

요즘 영화관에서 딱히 볼 영화가 많지 않다.

코로나로 인해 영화관람객이 줄면서 영화관람료는 겁나게 올랐다. 극장도 망하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근데, 코로나가 끝나도 한번 오른 영화관람료는 내리지 않았다. 쳇

극장 한번 가려면 나름 고심에 고심을 해야 한다.


사실,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제 맛이다.

큰 화면에, 빵빵한 사운드, 딴 데 보지 말고 화면만 봐!라고 외치는 듯한 어두운 실내.

완벽한 몰입을 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코미디 영화는 여러 사람과 봐야 재미있다. 아마 집에서는 피식 웃고 말 장면도 극장 안 사람들이 웃으면 나도 덩달아 웃게 된다. 공포영화는 또 어떤가? 극장 안 여기저기서 놀란 소리를 내면 나도 같이 놀란다. 또 얼굴도 모르는 사이지만 그들이 그렇게 믿음직스러워 집에서 혼자 공포물을 볼 때보다 덜 무섭다. 이런저런 이유로 영화관은 나에게 즐거운 놀이터다.


근데, 문제는 가격이다. 영화선택의 실패를 감당하기엔 영화관람료가 좀 사악하다.

만 얼마씩 내고, 재미없는 영화를 보고 나면 현타가 온다. 집에서 떡볶이나 먹으며 ott나 볼껄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완전히 재미있을 만한 영화, 입소문 자자한 영화를 굳이 찾아보는 버릇이 생겼다.


이런저런 이유로, F1: 더 무비를 개봉한 지 한 참 뒤 극장에서 봤다.

첫 장면부터 부릉부릉 난리도 아니다.

F1이 뭔지도 모르고 봤지만 게임의 규칙을 아느지 모르는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영화관이 떠나갈 듯, 시끄러운 자동차 굉음과 함께 내가 차에 탄 듯한 미친 속도감.

와우! 이 영화가 영화관에서 롱런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제작은 90년대를 풍미했던 상업영화의 귀재, 제리 브룩하이머. 주연은 브래드 피트.

언제 적 브래드 피트인가? 얼굴에는 주름이 자글자글하지만 자기 관리를 충실했는지 브래드 오빠는 아직도 멋있었다. 내가 젊었던 그 90년대 시절, 우리 브래드 오빠도 최전성기를 구가했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상스러운 동지애를 느끼며 옛날 감성과 현대적 감성의 조합이 너무 신나고 좋았다.


영화보고 꽤나 시간이 지난 후, 왠지 모를 씁쓸함이 느껴졌다.

그냥 흔하디 흔한 상업영화로 넘길 법한 영화지만, 왜 지금 이 시점에 제리 브룩하이머와 브래드 피트의 만남일까 말이다.

제리 브룩하이머는 90년대 내 또래라면 거의 다 봤을 콘에어, 더록 등을 감독한 할리우드의 유명한 블럭버스터 감독이다.

브래드 피트도 90년대 가을의 전설과 같은 영화에서 미친 미모를 뽐내며 찬란한 전성기를 구가했다.


90년대 미국은 전 세계의 경찰관 노릇을 하며 잘 나갔다.

소련과의 냉전시대를 지나서 전 세계 유일한 일빠 강대국

영화 인디펜던스데이에서 외계인이 지구에 쳐들어와도 미국인이 당당히 지구를 지켜냈고, 그것에 나는 의심을 품지 않았다.

내 무의식 속에 미국은 그런 존재였다. 아마 미국인들도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세월이 흘러, 나도 나이가 들어가고, 미국이라는 나라도 여러 가지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이유로 찬란한 전성기를 지난 것 같다. 더 이상 지구를 대표하는 정의로운 슈퍼맨 나라가 아니게 된 것 같다. (사실, 알고 보면 미국이 정의로웠던 적은 없었다. 내가 몰랐을 뿐)

더욱이 트럼프가 집권하면서 어떻게 저런 사람이 미국이라는 나라의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까? 정말 의아했다.

사람들은 트럼프의 당선이 일종의 사고라며 그 의미를 축소시키려 했다.

미국이 그럴 나라가 아니라며...

표현의 자유가 최우선시되고, 아메리칸드림 어쩌고저쩌고...


근데, 지난 1월 트럼프 제2기가 시작되었다.

대다수의 미국인들도 더 이상 실드불가가 아닐까 싶다.

아니면 먹고살기도 팍팍한데, 세계 경찰이라는 오지랖 떨지 말라는 미국인들의 솔직함이 트럼프라는 인물로 대표된 건가? 뭐가 되던, 미국 관련 뉴스를 보면 미국은 내가 알던 그 나라가 아닌 건 확실하다.


영화 F1 더 무비도 정신없이 보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90년대를 그리워하는 미국인들의 노스탤지어를 만족시키기 위해 기획된 영화였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뭐 그렇다고 꼭 나쁘다거나 좋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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