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턱턱 막히는 습도에 밤까지 식지 않는 열기, 급작스럽게 폭우가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하는 요상스러운 날씨 때문에 매일같이 기후위기를 걱정했더랬다. 우리나라도 이제 동남아가 되었구나. “이제 이것이 new normal인 것이야. 익숙해져야지.” 다짐을 하며 아침마다 습하고 더운 날씨에도 동네 공원을 꾸역꾸역 걸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 걷기 운동을 나가는데, 날씨 앱을 보니 꼴랑 온도가 23도, 최고 기온이 31도란다. 이번 주 내내 31도까지 밖에 되지 않는다.
와우! 드디어 더위가 끝나가나 보다.
하늘은 파랗고, 습기 없는 쾌적한 바람이 솔솔 불고, 심지어 아침에는 아주 살짝 한기가 느껴졌다. 기분 좋은 날씨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 입꼬리가 올라간다.
집안에 앉아있어도 좋고, 밖에 무작정 걸어도 좋고, 침대에 딩굴딩굴 누워있어도 좋다.
날씨 하나로 모든 걸 가진 듯, 부자가 된 듯, 너무너무 좋다.
더위 한가운데 있을 때는 정말 이 더위가 영원할 것처럼 느껴졌었는데, 끝이 있긴 있다.
여름 내내, 친구 한 명이 시댁 문제로 인한 남편과의 갈등으로 힘들어했다. 영원히 풀리지 않은 것 같은 갈등의 실타래로 힘들어하던 친구는 무 쪽 자르듯 관계를 잘라내는 것이 최선인 것 같다며 한숨지었다. 나도 같이 마음이 무거웠다.
요 며칠, 친구의 변화된 모습을 본 친구의 남편은 사과를 했다고 들었다. 아직까지 말끔하게 갈등이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영원할 것 같은 갈등도 결국엔 끝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인생은 그래도 살만한 것 같다.
아이가 신생아 시절, 잠을 푹 자는 것이 인생 최대의 소원이었다. 자다가 일어나 으앵하고 울어재끼던 아이.
잠을 못 자 비몽사몽으로 물을 끓이고 식히고 분유를 타는 그 잠깐이 영원과 같았다. 육아 노하우가 1도 없던 육아 바보 시절이라 나의 힘겨움은 더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모유 수유가 성공했고 나도 편하고 아기도 편한 밤이 시작되었다. 영원할 것처럼 새벽에 깨던 아기는 통잠을 자기 시작했고, 나도 푹 잘 수 있었다.
힘들 때는 모른다. 끝이 있다는 것을... 꼭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
힘들어 죽을 것 같을 때가 있으면, 어느새 살만한 때가 어김없이 찾아온다.
이 지긋지긋한 더위처럼 말이다.
이제 가을이다.
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