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뭐 벌건가?
갱년기인가 보다.
어느 날, 어디서든 까무룩 잠들어버리는 나의 초능력이 사라져 버렸다.
20대에는 머리만 바닥에 붙이면 잠드는 신묘한 능력을 갖었었다. 폭풍우와 거친 파도에 마구 흔들리는 배(아주 아주 큰 배였다.) 안에서, 일행들은 뱃멀미와 공포로 밤을 지새웠지만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숙면을 취하고 개운한 아침을 맞는 초능력을 선보인적도 있었더랬다. 꽤 요긴한 능력이었는데, 나이가 들어감에 잃어버리는 것들이 참 많다. 쩝.
어제는 오래간만에 좋아하는 도서관 카페에 가서 진한 카페라테 한잔을 먹은 것이 탈이었다. 먹을 때는 좋았는데...
항상 인생은 후회의 연속이다.
(잔잔한 음악과 좋아하는 책 한 권을 들고, 편한 소파에 파묻혀 홀짝홀짝 커피 한잔을 하는 건 꽤 호사스러운 나만의 사치다.)
밤 11시 반쯤 스르륵 잠이 들었다. 12시가 넘자 창문밖으로 급작스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부스스 몸을 일으켜 창문을 닫고 돌아다니는데, 정신이 말똥말똥해지기 시작했다. 다시 잠들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눈을 감고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기 시작했다. 덥고, 습하고, 깔끔하게 잠들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다.
(우리 집은 잘 때, 에어컨을 틀지 않는 불문율이 있다. 에어컨을 오래 틀고 자면 아침에 뭔가 몸이 무거워져서 그렇다. 어제는 좀 틀고 잘걸 그랬다. 역시, 인생은 후회의 연속이다.)
자자.. 자자..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유튜브에 올라온 잠잘 때 좋은 콘텐츠를 틀어본다. 차분한 목소리로 동화책을 읽어준다.
귀를 쫑긋 세워 듣는다. 잠이 와야 하는데... 잠이 안 온다. 안 와....
이대로 정녕 밤을 새우게 될까?
차라리, 불을 켜고 지겨운 책을 읽어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다행히 잠이 들어버렸다.
잠을 자다 깨다, 꿈을 잔뜩 꾸며, 가위에 눌렸다.
귀신이 나를 공격하는데, 씩씩한 나는 귀신에게 거친 쌍욕을 박으며 놈을 물리친다. 이런 내가 너무 대견하고 흡족하다. 칭찬한다. 나를. 토닥토닥!
(이 나이에도 귀신에 쫓기는 꿈을 꾼다.)
꿈속의 귀신과 한바탕 한 것 때문이지, 내 몸이 내 몸이 아니다.
눈은 반밖에 떠지지 않고 몸은 장맛비 잔뜩 맞은 솜이불처럼 무겁다. 다리 하나 들기 힘들다.
이럴수록 움직여야 한다.
기지개를 켜고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다.
혼자선 아까워서 잘 틀지 않는 에어컨을 쾌적 모드로 맞춰놓고 커피 한잔을 만든다. 유튜브로 카페음악을 들으며 어깨와 고개를 까딱까딱 리듬을 탄다. 따끈한 커피 한잔과 마트용 초콜릿케이크를 한 입을 베어문다.
이런 게 행복인 건가.
단순한 나는 어젯밤의 악몽을 잊고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줌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