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시간"을 보고
나는 오은영의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아이들의 문제가 항상 명확하게 분석되기 때문이다.
거칠고 불안도가 높은 아이들 부모를 보면 어김없이 통제적이거나 아이의 마음을 절대 공감하지 못하는 문제 부모가 나온다. 문제의 부모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김없이 또 다른 문제 부모가 등장한다. 폭력적인 가정환경이었다거나, 차별적인 부모이거나 모든 걸 통제하려는 부모아래에서 상처를 받고 자라난 아이들이 또 같은 형태의 부모가 되는 모습을 본다.
꽤 오랜 시간 프로그램을 봤기 때문에, 이제는 나도 반 오은영이 되었다. 거의 도식화된 관계가 프로그램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저런 부모만 되지 않으면 내 아이는 제대로 자라나겠지 하는 마음에서 더욱 열심히 시청한다. 또 아직까지는 청소년이 된 아들과 관계가 괜찮은 편이다. 그런 관계 설정이 오롯이 나의 노력과 능력으로 된 것 마냥 어깨가 으쓱하는 마음이 솔직히 없지 않다.
나는 저렇게 통제하는 부모가 아니므로, 나는 저렇게 아이의 마음을 몰라주는 꽉 막힌 부모가 아니므로 내 아이는 괜찮구나 하는 단순한 도식이 내 머릿속에 있음을 고백한다.
오은영의 "금쪽같은 내 새끼"가 교과서 기본 문제라면, 넷플릭스 시리즈 "소년의 시간"은 나에게는 어떤 심화 문제 같은 작품이다.
그간 읽어왔던 육아서와 심리 관련 도서, 또 오은영이 등장하는 콘텐츠와 같은 배경지식으로도 명쾌하게 해석하기 힘든 작품이다.
감독의 메시지도 "소년심판"과 같은 작품과 다르게 굉장히 모호하다. 나쁜 아이 위에 나쁜 부모라는 도식으로는 해석되지 않으며 기본적으로 그간 내가 많이 봐왔던 영화들과도 그 구성이 꽤 다르다.
다짜고짜, 경찰이 가정집을 쳐들어가 솜털이 뽀송뽀송한 13살 아이를 체포해 간다.
아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도 관객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영화 속 아이의 부모도, 관객인 나도 어리둥절하다.
총 4편으로 구성되는데, 1편에서는 아이가 경찰조사를 받는 과정을 굉장히 사실적으로 표현한다. 감정의 동요도 없다.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인물의 등뒤에서 카메라가 따라다니며 찍었음 직한 장면이 꽤 오랜 시간 진행된다.
2편에서는 아이가 다녔던 학교의 모습이 등장한다. 개판 오 분 전 학교, 선생님의 지도도 먹혀들지 않는 아이의 학교는 조사하러 간 경찰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사춘기 아이들의 혼란스러운 머릿속처럼 학교도 굉장히 혼란스럽다. 또 어른들은 모르는 그들만의 언어가 존재한다. 인스타그램의 하트 색상이 아이들에게는 각각 의미를 가진 언어인 셈이다.
3편에서는 가해자인 아이가 심리상담자와 상담하는 모습을 카메라는 조용히 지켜본다. 아이의 문제가 무엇인지 드디어 밝혀지려나 기대해 보지만, 그다지 정확한 실마리를 알려주지 않는다. 상담자와 편안한 분위기 안에서 상담을 받던 아이는 갑작스럽게 감정을 폭발하고 그것을 통제하려는 상담자를 오히려 제압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이에게 분명 문제가 있구나. 아이에게 문제가 있으니 잘못된 부모의 모습이 다음 편에 나오겠지 살짝 기대해 본다.
4편에서는 가해자 부모의 일상이 나온다. 생일날인 아이의 아빠는 아침부터 마음이 무겁지만 일상을 살아간다. 하지만 동네아이들의 짖꾸은 장난으로 마음이 복잡하다.
불편한 감정이 들 때, 아빠는 화를 참지 못한다. 역시나 아빠의 어린 시절은 학대받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런 부모라서 아이에게 문제가 생겼구나라고 짐작할 찰나에, 아빠는 자기 아버지와 같은 부모가 되지 않기로 다짐을 했고, 그 다짐을 잘 지켜왔다고 울면서 고백한다. 또 그런 모습을 다정히 지켜보던 아이의 엄마는 남편을 탓하기보다 따뜻하게 위로해 준다. 건강한 부부의 모습이다. 또, 아이의 누나는 어른처럼 굉장히 단단한 내면을 가진 성숙한 인간으로 자란 모습으로 표현된다.
내가 알던 그간의 도식으로 설명되기 힘든 설정이다.
같은 양육환경에서 어떤 아이는 살인을 저지르는 문제 아이가 되고, 어떤 아이는 성숙한 어른의 모습으로 자라난다.
영화를 보면서 인간이 인간을 키운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학의 함수처럼, 어떤 값을 넣으면 반드시 같은 결괏값을 내는 것이 아닌 것이다. 부모도 아이와 같은 하루하루의 일상 경험과 사건들로 똑같이 실수하고, 똑같이 성장하는 미숙한 인간일 뿐이다. 아이도 살면서 겪는 무수한 사건과 갈등으로 자라고 성장한다. 부모가 모든 것을 다 지켜줄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아이가 문 닫고 아이들만의 세상에서 어떤 일들을 겪고 있는지 어느 부모가 일일이 다 알 수 있겠는가?
생각이 많아지게 하는 영화다.
나의 노력과 능력으로 좋은 관계를 맺었다는 오만을 버리게 한다. 아직까지 큰 문제없이 자라고 있는 아이에게 감사하며, 아이의 세상이 평화롭기를 그저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