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안

by 노정희

몇 해전 어느 날부터 가까운 것을 보는 것이 힘들어졌다. 안경점에서 시력검사를 하는데, 안경사가 "노안이 시작되셨네요."라고 말을 해주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노안이라니...

처음으로 흰머리를 뽑았을 때와 같은 낯선 기분이었다.

내가 늙어간다니...

젊은것이 너무 당연해서 내가 늙어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도 없었던 때가 있었다. 누구나 늙는 것인데, 그때는 왜 몰랐을까?


그리고 몇 해가 흘러 이제 약 포장에 쓰여있는 깨알 같은 글씨는 읽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떻게든 읽어보려고 쓰고 있던 안경을 벗어봤다가, 다시 써봤다가, 눈앞에 가까이 가져왔다가, 멀리 보내봤다가, 눈을 가늘게 떠놨다가, 눈을 크게 떠봤다가, 온갖 짓을 하다, 포기하고 아이에게 대신 읽어달라고 한다. 쩌업

옛날 우리 엄마가 그랬는데, 나도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되었나 보다.


오늘은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내가 책을 독서대에 올려놓고 거의 50센티 가까이 떨어뜨려 놓고 보고 있다는 사실을 문뜩 깨달았다. 학창 시절에는 멀리 있는 것이 보이지 않아 안경 도수를 올리곤 했는데 참 희한하다.

젊었을 때는 멀리 있는 것이 보이지 않아 갑갑했다. 앞으로 나에게 닦쳐 올 일들이 두려워 전전긍긍, 아등바등했던 것처럼.


그때보다는 경험치가 많아졌는지 그때 보지 못한 것을 보기도 한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내 눈은 멀리 있는 것이 더 잘 보게 되었다. 가까이 놓고 자세히 보려고 아등바등해도 잘 보이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멀찍이 떨어뜨려 놓아야 한다.


더 잘 볼 수 있도록 움켜쥐었던 것을 놓은 게 자연스럽다는 것을 알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


세월이 흐른다는 것이 마냥 원망스럽지만은 않다.

앞으로는 뭘 더 알게 될까 궁금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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