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하지 마!!
매일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뒤, 나는 영락없이 글감을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가 되었다. '오늘은 뭘 쓰지?' 아침 화장실에서부터 고민에 잠긴다. 청소를 하다가, 설거지를 하다가, 빨래를 널다가도 골똘히 생각한다. 딱히 떠오르지 않아 '에잇, 유튜브나 보자!' 하고 켠다.
문득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본 <식스 센스>에 대한 웃픈 사연이 떠올랐다.
1999년, 나는 호주 시드니로 영어 연수를 떠났다. 대학 부설 연수기관에서 서툰 영어로 헤매던 시절, 영화는 꽤나 매력적인 영어 공부 수단이었다. 영어권 영화는 한국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는데, 왜 굳이 호주에서 봤을까? 모르겠다. 2000년을 앞두고, 참 좋은 영화들이 많이 개봉했을 때였다.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식스 센스는 연수생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탄 듯했다.
카페테리아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어떤 철없는 친구 녀석이 와서 대뜸,
"야!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이야!"
이러고는 휙 가버렸다. '뭔 소리야?' 싶어 이해하지 못하고 먹던 밥을 마저 다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뒤, 친구 몇몇과 함께 <식스 센스>를 보러 갔다. 영어가 들리지만 이해하기는 힘들었던 고달픈 그때, 겨우겨우 내용을 영상을 통해 짐작만 하던 그때, 영화에 브루스 윌리스가 나오자마자 너무 반가웠다.
"오! 귀신이 나오는구나."
이미 정보를 알고 있었기에, 나에게 영화는 꽤나 밋밋하게 흘러갔다. '귀신과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 불쌍하군' 등등의 피상적인 느낌밖에 받지 못했다. 영화가 절정으로 흘러갈 때 극장 안 사람들의 기절할 듯한 반응에, 비로소 뭔가를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는 '스포'라는 개념이 지금처럼 보편적이지 않았던 때라, 그 철없는 친구 녀석 때문에 엄청난 영화적 재미를 놓쳤다는 것을 뒤늦게야 알아차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영화 <식스 센스>는 브루스 윌리스의 존재 자체가 영화의 알파이자 오메가였다.
내가 쓰는 영화 에세이에도 많은 스포일러가 담겨 있다. 나 역시 그 철없는 녀석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건 아닌지 문득 되돌아보게 된다.
이 글 역시, 25년 전에 개봉했던 영화의 '스포'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