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서 <공정하다는 착각> 2

공정하다는 착각, 그리고 배려의 의미

by 노정희

어제 기말고사를 끝낸 아이와 한 시간 넘게 나름 철학적인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아이는 노력한 만큼, 능력만큼 결과가 나와야 그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아이가 궁금해한 것은 반 친구 중 지적 장애를 가진 아이에 대한 학교의 배려였다. 음악 선생님이 그 친구에게 특별한 배려를 해주었다. 그 덕분에 그 아이와 자신이 같은 점수를 받는 것이 과연 정당한지 의문을 제기했고, 뭔가 억울하다고 했다.


​처음에는 "그 아이는 장애가 있으니 비장애인이 당연히 배려해 줘야 마땅하지"라며 단호하게 일축하며 말했지만, 아이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아이의 논리는 이렇다. 운동 신경이 좋거나 나쁜 아이, 수학 재능을 타고났거나 그렇지 못한 아이가 있다. 타고난 재능에서 차이가 존재하지만, 100미터 달리기나 수학 시험에서 재능 있는 아이가 더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을 우리는 당연하게 생각하고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유독 장애를 가진 아이에게만 경쟁의 장에서 특혜를 주는 것이 올바른지, 사회배려자 전형이 치열한 대학 입시에서 특혜가 아닌지 불합리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순간 '무슨 뻘소리냐?'며 일축하려다가, 아이가 느끼는 감정을 제대로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에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또, 아침에 썼던 글이 생각나기도 해서, 나는 마이클 샌델 교수의 <공정하다는 착각>의 내용을 빌려 이야기를 시작했다.

​"네가 노력해서 뭔가를 성취했다고 해도, 그것이 100% 네 노력만으로 얻어진 것은 아니다. 네가 우리 집과 대한민국에 태어났다는 '운'이 작용한 결과다. 저개발국가에서 태어났다면 네가 아무리 노력해도 결과를 얻기 힘들었을 것이다. 네 노력이 중요했지만, 우연히 얻게 된 운에 의해서 얻어진 결과이기에, 네 노력과 재능으로 얻는 경쟁의 결과가 반드시 '완벽하게 공정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재능의 영역을 넘어 장애는 또 다른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장애 판정을 받았다는 것은 치료로 해결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발생했다는 뜻이며, 이 부분은 우리가 공동체로서 배려해주어야 하는 영역이 아닐까 설명했다. 또한, 사회배려자 전형은 너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에 정원 외로 진행하는 경우도 많다고 부연했다.


​아이와 논쟁과 말싸움을 넘나드는 시간을 보낸 후, 아이가 내 말뜻을 제대로 받아들였는지, 나도 아이의 속뜻을 완전히 이해했는지 모른 채로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지금 글을 쓰다보다, 서로 다른 이야기한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대화 말미에 지적 장애 아이를 둔 엄마의 에세이를 아이에게 들려줬다. 그 어머니에게 학교 점수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아이가 스스로 독립하고 공동체 안에서 생존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지상 최대의 과제이며, 자신의 소원은 '아이보다 하루 더 사는 것'이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아이는 울컥했다. 자신도 반 친구를 보면 잘해주고 싶어서 같이 놀다가도 불편한 점이 많이 생겨 자연스레 피하게 된다고 했다. "이런 내가 잘못된 것인지" 물었다.

​나와 관계없이 멀리서 보면 안타깝고 슬프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곧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현실이기에, 아이에게 '이기적으로 굴지 말라'고만할 수는 없었다. 나 또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시위로 지하철이 지연되었을 때 지각할까 봐 짜증을 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아이에게 "우리는 좀 더 운이 좋게 태어났으니, 불편하더라도 좀 더 배려해 보자"라고 이야기하며 대화를 매듭지었다.

​나의 행동과 말이 달라 아이에게 배려하는 인성을 진심으로 가르치지 못한 것 같다는 뭔가 씁쓸함이 남는 시간이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와 저서 <공정하다 착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