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어른들이 어릴 때부터 집안사정을 생각해서 어른스럽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아이들을 보면, 일찍 철이 들었다며 기특해하거나 안쓰러워하시곤 했습니다.
어린이는 어린이다운게 좋은데 - 일찍 철드는 것을 마냥 좋게 볼 수가 없었지요. 그런데 요즘에는 여러모로 생각이 많습니다.
한국인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외국인 어머니마저 집을 나가, 미혼이신 아버지의 큰누나가 남매를 기르고 있는 가정이 있었습니다. 첫째인 딸이 초등 3년 때부터 인터넷 채팅으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과 음란한 내용을 주고받은 게 확인된 이후로 관련 사건을 몇 건씩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겨우 사건이 법원에 송치되어 형이 확정되었는데 올해 또 같은 유형의 범죄가 발생해서, 공교롭게 첫 번째 사건 이후 2년 여의 시간이 흘렀고 피해아이는 올해 초등 5학년이 되었습니다. 첫 번째 사건 때에도 보호자이신 큰고모가 많은 충격을 받아 생업을 제쳐두고 상담소에 다니는 등 각고의 노력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별 효과가 없었고 올해 발생한 사건은 그 범죄 수위가 더 높아져 큰고모는 실신할 뻔하기도 했습니다. 사건을 담당하면서 지켜봤을 때 큰고모는 정말 부모처럼 남매를 키우고 있었고, 자신이 죽을 때까지 아이들을 책임지실 거라 했습니다.
피해아이에게 왜 인터넷 채팅방에서 모르는 사람과 음란한 대화를 나누게 된 건지 물어보니, 그 사람들은 큰고모처럼 자신을 혼내지 않고 예쁘다고만 한다고. 그리고 그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을 들어주면 용돈도 준다고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엄마랑 살고 싶다고도 했습니다.
큰고모가 남매를 엄마에게 일부러 보내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남매의 외국인 어머니는 양육의사가 전혀 없으며 현재 다른 가정을 꾸리기도 했습니다.그저 아이가 충격받을까봐 큰고모가 사실을말하지 못한 것입니다-
피해아동이 더 이상 이와 같은 범죄의 피해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핸드폰이나 탭을 뺏아서 채팅을 못하게 하는 것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적어도 피해아동이 큰고모가 보호자로서 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애정에서 비롯된 일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채팅으로 만난 가해자들이 예쁘다며 하는 부적절한 모든 대화는 건전한 애정이 아니며, 범죄라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이걸 이해할만큼...딱 그만큼만 철이 들 수는 없을까요?
피해아동이 범죄 피해자만 아니면 큰고모의 마음을 알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계속 같은 범죄가 발생하고 있으며, 이 일들을 수습하느라 큰고모는 건강이 정말 좋지 않은 상황입니다.
피해아동을 상담한 상담사와 학교 위클래스 선생님 그리고 각 관련 담당자들 모두, 아이가 조금만 철이 들었으면 좋겠다며 답답함을 토로했습니다.
큰고모가 극심한 우울증과 불면증을 겪고 있으며 현재 9살인 남동생도 돌보고 있는데, 상담을 할때 머릿속이 너무 복잡하고 예민하며 뭔가 날카로운 신경줄이 딱하고 끊어지면 그대로 죽을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저 큰고모분을 위로하며, 피해아동이 아직 철이 덜 들어서 그렇지 어서 철이 들면 고모마음을 이해하고 말썽도 안 부릴 것이다-라고 밖에 말을 하지못했습니다.
그동안 만났던, 일찍 철이 들어 부모를 도와 집안일을 하고동생들도 보면서 자기 할 일도 잘하는 수많았던 아이들을 생각해 봤습니다.
일찍 철이 드는 것이 정답은 아니지만, 이런 사건들을 보니 생각이 많아지는 그런 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