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홍대 고시원
고시원을 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당장의 수입이 없으니 뭐라도 해야 했다. 내가 구한 일은 식당 홀서빙이었는데 아침과 점심을 챙겨주는 곳이었다. 덕분에 식비를 아낄 수 있었고 아침도 잘 챙겨 먹을 수 있었다. 사장님은 입이 거칠지만 친절한 분이었다. 어느 날은 사장님이 메뉴에 들어가는 토핑을 뺄 것이라 선언했다. 직원들이 그럼 누가 사 먹냐고 반발하자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고 너희 먹는 음식을 줄일 순 없잖아. 못해도 두 주에 한 번은 고기를 구워 먹기도 했다. 사장님도 다른 직원들도 나를 막내라 부르며 잘 대해주었다. 썩 괜찮은 직장을 구했다고 생각했다. 직장은 충분히 만족스러웠고, 그만둘 문제는 내게 있었다.
정신과를 처음 간 건 대전에서 살던 열여덟 연초였다. 서울에 올라와서는 서울에서 다닐 병원을 찾았고, 운 좋게도 처음 간 병원이 만족스러웠다. 대전의 병원에서도 그랬듯 수면에 도움이 될 성분이 포함된 약을 처방받았다. 다만 내 수면 패턴은 일정하지 않았다. 약을 먹어도 어느 날은 밤을 꼬박 새웠고, 어느 날은 이삼십 분이면 잠들었다. 내가 아침마다 약 기운에 힘들어했기에 병원에서는 과한 약을 처방해주지 않았다. 약은 꾸준히 먹어야 했고 아침마다 약 기운과 싸워야 했다. 깨어나도 몸을 일으키지 못할 때가 많았고 깨어나지도 못한 때도 있었다. 창문이 없어 낮과 밤도 구분할 수 없는 고시원의 특성도 늦잠에 한 몫했다.
말했듯 나는 수면 패턴이 일정하지 않았다. 그런 나는 어린이집에 다닐 때부터 쉽게 잠들지 못했던 역사가 있어서인지, 절대 잠들 수 없는 날을 알아차리는 스킬이 생겼다. 아, 오늘은 무슨 짓을 해도 잠들지 못하겠구나, 하는 감이 오는 것이다. 자려고 꼼짝 않고 누워있어도 해 뜨는 걸 보게 되는 밤들을 겪어본 나는 그런 날을 굉장히 괴로워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은 아예 자기를 포기하는 것이었다. 눈 감고 누워만 있어도 어느 정도 수면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야 하지만 나는 그 말이 잠을 잘 자는 사람에게서 나온 말일 것이라 추측했다. 수많은 잡생각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몸은 배기고 시간은 가지 않는데 꼼짝 않고 누워있는 건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잠들지 못할 것을 깨달은 밤에는 산책을 나갔다. 고시원 앞이 홍대 거리였으니 걷기 나쁘지 않았다. 평일 새벽에, 홍대입구 9번 출구 버스킹 거리는 한적했다.
버스킹 거리에는 원형 무대처럼 버스킹 존이 있었고 관중 쪽엔 턱이 있었다. 나는 그 턱에 앉아 잡생각을 풀어놓았다. 자야 한다는 강박이 없으면 잡생각이 그리 나쁘진 않았다. 어릴 때 우연히 자자의 버스 안에서를 듣게 된 이후로, 잠을 ‘자자’고 생각하면 자자의 <버스 안에서>가 생각나 자연스레 흥얼거리게 되었다. 그렇게 비슷한 노래를 부르고 또 그 노래가 다른 생각으로 이어지고. 소시지처럼 끊어지지 않고 줄줄이 이어지는 잡생각이었다.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노래를 틀기도 하고 부르기도 했다. 누군가가 지나가면 아무것도 안 한 척 조용히 했고, 그러다 답답해지면 다시 노래를 부르며 홍대 거리를 거닐었다. 큰길 쪽으로 나와 아무도 없으면 건물 꼭대기를 바라보았다. 높은 건물들이 즐비한 곳이 아니었음에도 서울은 여전히 어색한 곳이었다. 그렇게 돌아다니면 늦게라도 잠들 수 있었다. 오래 자지 않았어도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개운해 무사히 출근을 했다. 다만 아침에 느낀 개운함이 오래가지는 않았는데 일이 끝나고는 졸려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참지 못하고 낮잠을 자면, 다음 날의 수면 패턴은 망가져 버렸기에 잠들지 못하거나 졸린 채로 살아야 했다.
졸렸지만 쉬이 잠들지 못했던 밤, 산책을 나가지 않았던 밤, 몸이 무거워 스스로를 일으키지 못했던 그 아침에, 나는 출근하기를 포기했다. 목소리를 듣는 것도 뱉는 것도 두려워 사장님께 문자를 보냈다. 정신 건강과 불면증과 나약함을 핑계로 그만두겠다는 말을 장황하게 했다. 사장님의 전화는 받지 못했다. 불도 켜지 않은 방에서 나는 내가 얼마나 못나고 부족한 사람인지를 되뇌었다. 한 칸짜리 공간은 그런 내가 충분히 작아질 수 있는 공간이었다. 고시원 방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아늑했고, 벗어나야 한다 느꼈고, 벗어나기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