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0 한 칸짜리 고시원

01 홍대 고시원

by 열원

나는 즉흥적인 성향이 강했다. 정확히는 참을 수 없는 충동이 생기면 실행하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그중 한 사례가 집을 나온 것이다. 열아홉 살, 여러 번의 사소한 마찰 끝에 집을 나가야겠다 결심했고, 결심이 서자마자 짐을 쌌다. 당장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었고 당장이 아니라면 못 할 일이었다. 무작정 집을 나와 아르바이트를 하던 사무실에 머물렀고 더 멀리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와 부모님 모두 가시를 세우고 있었는데 서로의 상처는 보지 못하고 자신의 상처만 보던 때였다. 그랬기에 그들을 떠나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떠났다. 관계의 유지를 위한 일이었다. 나는 그나마 연고가 있고 그나마 할 것이 많을 서울로 가기로 했다. 물론 ‘그나마’는 꽤나 빈약한 수준이었다. 서울에서 택한 건 홍대였다. 왜 홍대였냐 하면, 서울 하면 바로 떠오르는 두 곳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강남이었는데 내가 아는 강남은 높은 빌딩이 빼곡한 곳이었기에 피했다. 내가 머물 거처가 없을 것 같아서. 서울에 올라가기 전 부모님과 밖에서 만나 저녁을 먹었다. 좋게 떠나는 것도 아니었고 독단적인 결정이었지만 그래도 걱정스러웠는지 아빠는 백만 원을 줬다. 아빠가 준 돈과 내가 모았던 돈이 많은 돈인 줄 알았건만. 서울에 올라와 먹고 자기만 하는데도 그 돈이 그리 빨리 사라질 줄은 몰랐다.


서울에 올라와 사흘간 지인 집에 머물며 홍대 고시원을 알아봤다. 어떤 곳은 사람도 없이 알아서 보고 가라고 하기도 했고, 어떤 곳은 화장실이 너무 더러웠다. 내가 고른 고시원은 비교적 깔끔하고 오래되지 않은 곳이었다. 방에는 미처 정리하지 못한 이불이 있었는데 치워주겠다는 총무에게 그럴 필요 없다고 말했다. 내 형편에 이불을 사는 것과, 이불이라는 짐을 만드는 건 꽤 부담스러운 일이었으니까. 나이를 물어보기에 스무 살이라 했고, 학생인지 묻기에 그렇다고 했다. 관심도 없겠지만 총무는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게 되었다. 보증금 30에 월세 30. 방은 정말 한 칸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았다. 대부분의 고시원이 그렇듯, 수납공간과 책걸상, 책상 아래로 끄트머리가 들어간 침대, 옷을 걸 수 있는 봉이 방의 전부였다. 나는 화장실도 창문도 없는 자그마한 그 방에 입실했다.


고시원 생활은 완전히 좋기만도, 완전히 나쁘기만도 하지 않았다. 나는 타인에 대한 결벽증이 있었는데, 남의 몸에 닿은 물이 튀는 것이 끔찍해 목욕탕을 싫어하고, 공중화장실에서는 항상 변기 커버에 휴지를 깔아놓는 게 그 증상의 발현이다. 단순히 타인이 더럽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먼 사람일수록 불결하게 느끼는 결벽증이었다. 그렇기에 모르는 사람뿐인 고시원 공동 공간은 불쾌할 수밖에 없었다. 식당에서라면 청결을 신경 쓰겠거니 하고 먹지만 고시원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밥과 김치는 조금 꺼려졌다. 누가 어떤 식으로 먹는지 알 길이 없으니 그랬다. 그럼에도 그 밥과 김치를 먹어야 하는 내가, 공용 세탁기를 써야 하는 내가, 공용샤워실에서 샤워를 해야 하는 내가 께름칙했다. 그렇기에 되도록 타인이 세탁기를 쓰거나 샤워하는 장면을 마주하지 않으려 했다. 누군가가 썼다는 인식이 남으면 빨래나 샤워를 하고도 찝찝했다. 내 결벽증은 청결도와는 무관한 것이어서 단지 말 한 번 나누지 않은 누군가가 닿았다는 것 자체가 나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내가 유달리 깨끗한 것도 아니고, 나를 제외한 모두가 더러운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러나 고시원의 개인 공간인 내 방에 대해서는 만족했다. 캐리어 두 개와 박스를 바닥에 두고, 수납공간에 짐을 겹겹이 넣으니 방에 여백이 많지 않았다. 눕거나 앉아만 있는 그 방에서, 공짜 이불 쓰는 부유하지 않은 삶이었지만 좋았다. 다들 고시원은 힘들고 사람이 미치는 곳이라 하는데 나는 그래도 꽤 고시원 체질이라고 생각하며 행복했던 것 같다. 방음이 괜찮은 편이라 외부에서 오는 불편함이 거의 없었다. 불을 끄고 어두운 방 안에 누워 있으면 아, 이 한 칸만큼은 내 공간이구나, 싶었다. ‘온전한’ 내 공간이 처음이었다. 나는 그런 공간을 절실히 원했었다. 가족들과 살던 집에서 내 방문이 고장나 잠기지 않았었는데, 누군가 노크도 없이 들어올 때면 깜짝 놀랐고 그저 혼자 있음을 들켰다는 이유만으로 수치스러웠다. 옆에서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동생의 숨소리까지 신경을 건드려 눈물을 흘린 적도 있었다. 내가 그렇게 예민했던 것은 한 번도 독립된 공간을 가지지 못한 데서 기인한 것이었다. 또한 내 물건과 공간을 나 자신만 만질 수 있다는 것에 기뻤다. 나는 혼자 있음에, 문을 잠글 수 있음에, 아무도 만지지 않는 소유에, 아무도 들어올 생각하지 않는 내 공간에 감사함을 느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가 내 영역에 침범해 상처 주는 일이 없을 것이기에 안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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