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오십만 인구의 대전 사람, 천만 서울로

프롤로그

by 열원

열일곱 살에, 닷새 동안 서울에서 머물렀다. 그 당시 나는 학교를 다닌 지 한 달 만에 자퇴를 결심했고 쉼이라는 명목으로 무작정 서울 여행을 계획했다. 그때는 내가 서울에 살게 될지도, 서울과 대전을 자주 오가며 강남고속버스터미널을 헤매지 않게 될지도 알지 못했다. 나는 가출을 해도 부모님께 위치를 설명하며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는 아이였기에, 부모님에게 머물 숙소를 말한 뒤 확인 전화까지 했다. 512번 버스를 타고 대전역으로, 대전역에서 서울역으로, 서울역에서 내가 머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숙소인 게스트하우스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서울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혼자는 처음이었다. 이 년 전에 왔던 서울이 이렇게 복잡했나. 나름 백오십만의 대전광역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할 수준이었다. 특히 서울역은 나를 애먹게 만들기 충분했다. 버스를 어디서 타야 할지 모를 서울역버스환승센터도 그랬고, 찾을 수 없는 지하철 출구도 그랬다. 하나 위안이 되는 것은 부끄럽게도 노숙자들이었다. 여기도 화려한 것만 있진 않구나, 다양하게 살아가는구나. 나는 그렇게까지라도 위안 삼을 것이 필요했다. 부끄러운 고백이다.


서울은 특이했고 그 틈에 낀 내가 촌스럽게 느껴졌다. 빅이슈 잡지를 파는 판매원들, 외국인이 많은 거리, 대전보다 훨씬 긴 지하철. 비슷한 건, 비둘기. 어디를 가나 비둘기가 많았다. 홍대에도, 대학로에도, 신촌에도 많았다. 같은 한국인에게는 동질감을 느끼지 못하면서, 종도 다른 비둘기에게는 동질감을 느꼈다. 그렇게 비둘기와 함께 다녔다. 서울에서 살았던 동생이 홍대 놀이터에 가면 연예인을 볼 수도 있다고 해서 놀이터도 갔다. ‘서울에서 연예인 보기’는 하나의 목표였는데, 연예인을 보지 못한 건 아니지만 꼭 서울에서 보고 싶었다. 당연히 홍대 놀이터에 연예인은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상암이었다. 무한도전 같은 프로를 보면 그 앞에서 촬영도 많이 하니까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마침 다음 날이 무한도전 촬영 날이라는 목요일이었다. 다음 날 상암 MBC에 도착했을 때, 무한도전은 없었고 보이는 라디오가 진행 중이었다. 정오의 희망곡의 김신영이 옥상달빛과 나와 있었는데, 옥상달빛의 팬까진 아니었어도 몇 곡을 알고 있어서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가장 좋아하던 건 <없는게 메리트>였다.


없는 게 메리트라네 난
있는게 젊음이라네 난
두 팔을 벌려 세상을 다 껴안고
난 달려갈거야


그때 이 노래를 불렀던 것 같기도 하고 착각인 것 같기도 하고. 어찌 되었건 그 노래를 머릿속으로 부르며 상암 MBC에서 나왔다. 젊다고 행복해하진 않았는데, 젊었기에 그런 의식조차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보다는 미래가 덜 막연했다.


상암에는 그 외에 할 게 없었기에 금방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에서는 항상 가방을 앞으로 끌어안았다. 엄마가 하도 서울은 눈 뜨고 코 베인다고 겁을 주었기에 그랬다. 서울은 무심한 현대인과, 소매치기와, 냉혹함뿐인 도시라고 스스로를 세뇌했다. 방금 전까지 머릿속으로 노래를 불렀어도 지하철만 타면 겁을 잔뜩 먹었다. 가방을 꼭 끌어안은 내가 얼마나 촌스러워 보였을지 상상이 가지만, 나름대로 촌스럽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빌딩숲을 지나며 빌딩 꼭대기를 쳐다보는 짓을 겨우 참아냈는데, 아마 그것뿐이었을 거다.


촌스럽지 않아야지, 그래도 촌스럽다, 그런 생각을 계속했다. 마치 촌스러움을 죄악으로 여기듯 말이다. 사실 지금도 촌스러움을 두려워한다. 다만 전보다 덜 촌스럽다는 점이 두려움을 옅어지게 해준다. 촌스러움을 경계하는 사람은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을 알고 있다. 벗어나려면 인식 자체를 버려야 한다. 서울도 그렇다. 서울을 특별히 ‘서울’로 여기지 않아야, 불편하지 않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서울은 특별했다. 남의 도시였고 남의 세상이었다. 낄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진 채 끼지 못하고 있었다. 달라지지 못한 나는 대신 타인을 미워하게 되었다. 나처럼 구질구질해지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을 미워했다. 지하철로 서울에 갈 수 있는 천안 사람을, 그보단 경기도의 사람을, 그보단 서울의 사람을, 그보단 사대문 안에서 태어난 사람을 미워했다. 그들은 애초부터 서울 사람이니까 나같이 쓸데없는 걱정을 하진 않겠지. 방향이 잘못됨을 알고서도 시작한 미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