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하기를 바랐음에도 가난하게 살아가는 몸뚱이

03 홍대 고시원

by 열원

서울에 올라온 나는 스스로가 멋있다고 느꼈다. 버스킹도 구경하고 카페서 커피도 마시고 연극도 보고 친구들도 만나는, 한량이자 문화인 같은 스스로에게 말이다. 돌이켜보면 그 전에도 내가 멋지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람들은 자존감이 높다고 말했지만, 자존감이 낮아서 계속 스스로가 멋진 사람이라고 위로했다. 서울에 혼자 올라왔을 땐 위로하는 것이 극에 달해 있었다. 스스로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 내가 멋진 사람이라 다독여줘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자존감이 바닥을 쳐 올라오지 못할 것 같았기에 그랬다. 후에 발병한 내 양극성 장애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내가 바닥에 다다를 즈음 완전히 꺼지지 않기 위해 탁 치고 한 순간에 고점까지 올라가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건강한 방식은 아니었고 살아가기 위한 방식이었다. 나는 내 바닥을 알아서 어떤 식으로든 그 바닥에 닿지 않으려 했다. 진부하게도, 열아홉의 나는 젊음과 자유로움에 취해 있었다. 젊었기에 뭐든 천천히 해도 될 것 같았고 자유롭게 사는 모습이 멋있게 느껴졌다. 그렇게 바닥을 피했다.


꿈이나 목표를 물어보면 내 생활을 걱정하지 않을 정도의 부자가 되는 것이라 말한다. 돈 욕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안정될 정도로 돈이 많아야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이 보일 것 같아서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부유하기를 바라면서도, 나는 풀타임 아르바이트나 직장을 구하지 않았다. 하루에 대여섯 시간이 상한선이었고 주말에는 무조건 쉬어야 했다. 더 일한다면 내 멋짐을 유지할 수 없었다. 여덟 시간, 즉 하루 삼 분의 일을 돈벌이를 위해 쓴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개미처럼 일하는 스스로를 비관하며 매일을 보낼 내 모습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살아갈 수 없었기에 적당히 일을 했고 자연스레 돈이 떨어져갔다. 수입이 백만 원도 되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서울에 올라온 뒤 삼십만 원의 고시원 월세도 내야 했고, 배우고 싶던 글 수업료도 내야 했으니 당연히 돈이 부족했다. 그때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엄마는 내 경제난을 어련히 알아서 돈을 보내줄지 물었고, 나는 거절하지 않았다. 그런 순간을 몇 번 더 지나고 보니 어떤 때는 내가 먼저 돈이 떨어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호기롭게 집에서 나온 나는 돈 앞에서 약해졌다. 그럼에도 내 자유는 포기할 수 없어 부모님에게 돈을 받았다. 솔직히 말해서 게으르고 영악한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부모님이 돈 없는 아들을 외면할 타입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자연스레 손을 벌린 거겠지. 마음이 마냥 가벼운 건 아니었다. 힘들게 일하는 부모님의 돈을 뜯어내는 내가, 그 돈으로 얻은 시간을 가볍게 날리는 내가 싫음에도 그런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자유에 취해 있었고 자유에 취한 내 모습에 취해 있었다.


내 자유는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것 외에 자해성도 있었는데 그중 가장 자주 했던 것이 종일 피시방에 있는 것이었다. 게임이 좋았다기보단 게임만 하며 폐인 같아지는 내 모습이 좋았다. 반복적인 게임이 무료해짐에도 게임을 놓지 않는 내가 좋았다. 게임을 오래 해 몸이 찌뿌둥하고 눈이 피로해지는 게 좋았다. 피시방에서 식사를 하는 것도 좋아했는데 캐릭터가 죽어 있는 시간에 허겁지겁 밥을 먹는 내가 한심해 보여 그랬다. 내가 온전하길 바라면서도 망가지길 바랐다. 이건 건강한 자유와는 다른 회복 수단이었다. 나는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걸 증명하는 동시에, 얼마나 많은 것을 하고 있는지를 증명해야 했고, 어떻게 시간을 갉아먹는지를 증명해야 했다. 그 증명은 스스로에게 처방하는 약이었다. 내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 쉬지 않고 나를 안심시켰다. 어떤 약을 어떻게 복용해야 할지 몰라 잡히는 대로 오남용했던 때다.


열아홉으로 돌아가면 그렇게 살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없지는 않다. 다만 그 시절을 보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더 크다. 여전히 살아감에 유의미한 무언가를 발견하지는 못했어도 그렇게 버틴 날들이 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 것이라 확신한다. 죽음에도 유의미한 무언가를 찾지 못했으니, 어찌저찌 살아가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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