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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혁준 Jan 17. 2021

등번호 시리즈 : 10번의 진화

살아남기 위해 진화를 택한 이들

 시대에 따라 축구는 변화한다. 변화하는 축구에 맞춰 선수들도 변화한다. 변화한 선수들을 유형별로 분류하여 어떤 점이 변화했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볼 것이다. 맨 먼저 알아볼 포지션은 팀의 에이스, 팬들을 기대하게 하는 판타지스타, 10번이다.


출처 : 네이버 뉴스


 확실히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등번호 10번은 팀의 에이스를 의미한다. 전통적으로 10번의 역할은 팀을 리딩하고 경기의 흐름을 읽고 공격의 판을 만들며 결정적인 기회를 창출해내는 선수, 트레콰르티스타의 역할이었다. 전통적인 10번은 뛰어난 시야, 킥, 패스를 이용해 적은 활동량으로도 팀에 충분한 기회를 제공하는 천재과의 선수들이 맡았다. 과거에는 ‘10번의 역할을 부여받은 선수는 공격적인 부분만 책임지면 된다.’는 인식이 주를 이뤘으나 현대로 넘어오면서 이 인식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많은 활동량과 기동력, 수비수의 공격 가담, 공격수의 수비 가담을 선수들에게 요구하기 시작하면서 전체적인 팀의 에너지 레벨을 높이며 상대를 제압하는 방식의 축구를 감독들이 선호하기 시작했고 하나의 역할만 하면 되는 선수는 점차 사라져 갔다. 팀별로 10번에게 요구하는 역할이 달랐기에 이 10번의 선수들은 변화해야 했다. 현대로 넘어와 변화한 10번의 유형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출처 : 네이버 뉴스


 첫 번째, 점점 희미해져 가는 전통적인 10번이다. 이들은 엄청난 시야와 창의적인 패스로 수비진의 균열을 일으키고 공격수에게 공을 전달한다. 잦은 수비 가담이나 왕성한 활동량을 보이지는 않지만 팀이 필요로 할 때 한 번의 패스로 기회를 만들어 승기를 가져올 수 있는 선수들이기에 ‘수비 가담이나 활동량이 적다.’는 표현보다 ‘공격을 위한 체력을 경기장 내에서 조절한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어울린다. 가장 최근까지 활약을 보인 선수 중 이와 가장 잘 어울리는 선수는 독일의 메수트 외질이다. 외질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하다가 2010 남아공 월드컵을 통해 스타덤에 올랐다. 당시 외질은 전차군단의 새로운 엔진이라 불리며 독일의 4강 진출을 이끌었고 대회 활약을 바탕으로 레알 마드리드에 이적하며 자신의 재능을 꽃피웠다. 외질은 믿을 수 없는 시야와 날카로운 패스를 통해 호날두와 함께 레알 마드리드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2013년 여름 이적시장을 통해 아스날로 이적했다. 아스날에서도 외질은 남달랐다. 팬들은 ‘벵거 볼의 마지막 퍼즐’이라 부르며 그의 합류를 반겼고 외질은 15-16 시즌, 리그에서만 19개의 도움, 28개의 기회 창출을 해내며 본인이 팀의 에이스임을 증명했다. 프리미어리그로 둥지를 옮긴 외질은 자신의 어마어마한 장점과 함께 명확한 단점을 보여줬다. 전통적인 10번의 선수가 가진 특징처럼 적은 활동량, 긴 소유 시간으로 팀의 템포를 잡아먹기도 했고 외질 특유의 느린 발과 몸싸움을 피하는 움직임은 압박과 몸싸움이 강한 프리미어리그와 어울리지 않았고 점차 기복이 생겼다. 나이가 들어가며 폼도 떨어졌고 결국 외질은 아르테타 감독의 계획에서 완전히 제외되며 프리미어리그 명단에서도 제외되었고 현재 이적을 모색하고 있다.


출처 : 네이버 뉴스


 두 번째 유형은 일명 ‘미들라이커’이라고 불리는 가짜 공격수 유형이다. 나는 이 가짜 공격수를 두 부류로 나눈다. 하나는 공격수임에도 10번의 역할을 해주는 선수, 우리가 흔히 9.5번이라고 부르는 공격수이고 다른 하나는 미드필더임에도 9번의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선수이다. 전자는 벤제마, 현재의 라카제트와 같은 선수들이고 후자는 뮐러, 카이 하베르츠 같은 선수이다. 우리가 살펴볼 것은 미드필더임에도 공격수 역할도 겸하는 선수이다. 대표적인 선수는 프랭크 램파드, 토마스 뮐러, 카이 하베르츠이다. 공교롭게도 두 명이 독일 선수인데 이러한 유형의 선수들은 완벽한 패스나 날카로운 킥으로 기회를 만들기보다는 파이널 서드 지역에 위치한 본인이 패스를 주고 공간으로 들어가면서 수비의 균열을 만들어 공격수에게 공간을 제공하고 어떨 때는 본인이 직접 그 공간으로 들어가며 득점하기도 한다. 사실 토마스 뮐러는 공격수로 분류하는 게 더 맞을 수도 있으나 최근 레반도프스키 바로 밑에 위치하며 미드필더처럼 뛰고 있기에 이와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 현역 중 이 모습과 가장 어울리는 미드필더는 카이 하베르츠인데 하베르츠가 활약했던 레버쿠젠 시절 하베르츠는 율리안 브란트와 함께 측면과 중앙을 오가며 넓은 공간을 커버했고 공간을 발견하면 주고 들어가는 움직임을 통해 많은 득점을 올렸다. 이러한 유형의 선수들은 공간 침투나 라인 브레이킹에 능한 원톱 밑에 약간 처진 스트라이커처럼 배치해 사실상 투 톱처럼 활용할 수도 있고 버텨주는 플레이가 좋은 타겟맨 밑에 배치해 떨어지는 볼에 대한 득점을 할 수 있도록 활용할 수도 있다. 밀집 수비와 낮은 라인을 사용하는 상대적 약팀을 만난다면 이들이 침투할 하프 스페이스나 뒷공간 수비가 많아 이들이 고전할 수 있으나 비교적 공간을 허용하는 전력이 비슷한 팀이나 강팀을 상대할 때의 이들은 본인이 가진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


출처 : 네이버 뉴스


 세 번째, 날카로운 킥을 이용하는 선수들이다. 이들은 본인이 가진 킥력이나 시야를 이용해서 수비진을 흔들거나 강력한 중거리 한방으로 게임을 뒤집을 수 있는 선수들이다. 이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득점할 수 있는 클러치 능력도 갖고 있고 본인의 킥을 이용한 좌우 전환, 프리킥, 코너킥, 중거리 슛으로 게임을 바꿀 수 있는 선수들이다. 대표적인 선수로 하메스 로드리게스, 스티븐 제라드가 있다. 이러한 선수를 상대하는 수비수는 상당히 곤혹스럽다. 이들은 파이널 서드를 수비진이 장악하더라도 그 뒤에서 중거리 한 방을 보여줄 수 있는 선수고 수비진 중 한 명이 이 선수를 마크한다고 하면 그 나온 공간으로 날카로운 킥을 집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발이 느리더라도 롱 킥을 이용한 전개가 가능하고 밀집 수비는 중거리 풀어낼 수 있다. 데드볼 상황은 이들의 놀이터이다. 어찌 보면 전통적인 10번과 비슷하지만 패스보다는 강한 킥을 이용하기에 조금은 괴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들의 파훼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킥에는 준비 동작이 필요하기에 비교적 압박에 취약하다. 기동력을 갖추지 않았다면 이러한 상황을 풀어가는데 더욱 어려움을 느낀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 기동력이 떨어진 이러한 유형의 선수들을 수비형 미드필더 위치에 배치해 장점을 살려 레지스타처럼 활용하기도 한다.


출처 : 네이버 뉴스


 마지막으로 본인의 활동량을 이용해 공 운반과 드리블을 통해 균열을 만드는 선수들이다. 이러한 유형의 선수들은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 배치하더라도 수비지역까지 내려와서 본인이 직접 공격 지역까지 공을 운반하며 공격을 주도한다. 이러한 선수를 보유한 팀은 이 선수를 중심으로 공격 라인을 움직이는데 공을 직접 운반하며 공격을 진두지휘하는 선수가 있기 때문에 팀 전체적인 에너지 레벨과 활발함이 올라간다. 대표적인 예는 최근 아스톤 빌라에서 놀라운 활약을 선보이고 있는 잭 그릴리쉬이다. 그릴리쉬는 중앙 지역과 측면 지역, 좌측 하프 스페이스를 모두 커버하며 공격을 이끄는데 수비 가담도 열심히 하고 팀의 중원 싸움도 도와주면서 직접 공을 운반한다. 그릴리쉬의 이런 활약 덕분에 빌라는 좋은 기세를 보이며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두고 있다. 이러한 선수들은 피지컬적인 장점을 갖고 있다. 활동량이 좋거나 속도가 좋거나 드리블이 좋다. 또는 신체적인 밸런스가 좋아서 몸싸움을 잘 견딘다. 다만 이렇게 공을 가지고 올라가는 유형의 선수는 언제나 태클과 몸싸움에 의한 부상에 유의해야 하며 팀 전체적인 압박이 함께 어우러질 때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나 팀 자체가 정적인 플레이 스타일을 가져가는 팀이라면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 경기의 활발함을 끌어올려 줄 수 있으나 전술을 탈 수 있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출처 : 네이버 뉴스


 물론 케빈 데 브라이너나 브루노 페르난데스와 같은 현재 좋은 폼을 보여주고 있는 선수들은 위 설명한 장점들을 모두 갖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높은 클래스의 선수들은 이러한 분류가 무의미하지만 축구의 변화에 따라 변화하는 선수들의 유형을 분류한 것이기에 시대가 요구하는 역할도 변화할 수 있고 이러한 장점을 이용해서 변화하고 있다는 것 정도만 확인하면 된다. 경기에 즐거움을 더해주는 10번, 그들은 또 어떤 선수로 진화할지 기대된다. 축구는 진화한다. 선수들도 진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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