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최소 단위

by 소혜


모레부터 전국에 비가 내린다고 한다. 늦봄과 초여름 사이에 떠있는 먹구름이 조금 어색할 것 같지만, 제법 익어가던 햇빛이 비로 식어서 좋다. 나는 낮이 길어지는 계절이 오면 오히려 움츠러든다. 한낮의 활기가 부담스러워서 되도록 나가려 하지 않고, 형광등도 웬만하면 잘 켜지 않는 편이다. 대신 얇은 꽃무늬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은은한 햇볕이 이불에 내려앉는 것은 좋다. 그 한줄기 햇빛 아래 잠들어 있는 하얀 강아지를 보는 것은 더 좋다. 살면서 이렇게 빈틈 없이 꽉 찬 애정을 느끼는 순간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방금 쓴 문장은 머릿속에 오래 머금지 않고 빠르게 손가락을 움직여 적었다. 이렇게 정돈되지 않은 채로 솔직하게 흘러나오는 사랑을 마주할 때 기쁘다.



나에게 사랑은 무언가를 쓰고, 어루만지는 일인 것 같다. 좋아한다고 말하기 부끄러워서 괜히 등을 콕 찔러보는 마음처럼, 입 밖으로 내뱉기 어려운 생각들을 자주 쓰고 한참 들여다본다. 이제 나이가 들어 눈과 귀가 멀어가는 내 강아지를 말없이 쓰다듬는 시간도 많아졌다. 나의 목소리를 잊어버려도 손의 감촉과 온기는 기억해 주면 좋겠다. 감각은 말보다 선명히 기억되는 사랑의 형태일 수도 있다.

근사하고 멋진 사랑이 뭔지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손끝으로 사랑을 적고 소중한 존재를 만질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고 감사하다. 어쩌면 나에게 있어 사랑의 최소 단위는 손가락일지도 모르겠다. 입으로 내뱉은 말보다 손가락으로 적은 글자들이 더 진짜 같이 느껴지는 묘한 순간들이 많다. 그리고 좋아하면 자꾸 적고 싶어진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말수는 줄어들고 손가락은 늘 바쁘게 움직인다. 숨이 차게 적어 내린 글자들을 가만히 만져보면 그것들이 튀어나와 어딘가로 데굴데굴 굴러갈 것만 같다. 그렇게 열심히 굴러가다 마침내 상대에게 도착해서 내 마음이 전해지는 바보 같은 상상을 한다.

내 사랑이 묻어 있는 손가락의 온기가 언젠가는 당신에게 닿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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