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봄과 장미

by 소혜


절정에 이른 아름다움과 느리게 흐르는 시간 틈에서 피어난 마음에 대해 적는다.

흐드러지게 핀 오월의 장미는 넋을 놓을 만큼 아름답다. 붉고 선명한 꽃잎은 햇빛 아래서도, 달빛 아래서도 싱그러이 제 존재감을 드러낸다. 너무도 흔하고 익숙한 꽃이라 때론 진부하게 느껴지지만, 어느 오월의 밤에 마주한 장미 앞에서 그 생각이 무색해지고 말았다. 산책하던 발걸음이 느려지고 손은 주머니 속 휴대폰을 향했다. 짙은 코발트블루빛 하늘 아래, 초록 나무와 붉은 장미가 ‘찰칵’ 소리와 함께 작은 화면에 담겼다.


봄은 만물이 생동하는 계절이다. 제철을 맞은 생명들은 부지런히 빛을 모아 잎을 틔운다. 그중에서도 꼿꼿한 자태를 뽐내는 장미는 봄날의 풍경 중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다른 꽃들이 시련을 견디고 끝내 환한 웃음을 짓는 어느 영화의 사랑스러운 주인공 같다면, 장미는 마치 평생을 그 자리에서 우아하게 살아온 귀족 같다. 꽃의 여왕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가 보다. 물론 사연 없는 꽃은 없을 테니, 이처럼 우아하고 견고하게 피어나기 위해 견딘 순간들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곧 다가올 거센 장맛비에도 쓰러지지 않고 오래도록 고개를 들고 있으면 좋겠다.


겨울에 움을 트는 마음이 너무나도 많은 나는, 밤을 걷다 우연히 마주한 늦봄과 초여름 사이의 풍경이 낯설면서도 좋아서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렇게 아름답고 단단한 것을 보면 추운 마음들이 봄을 향해 저물었다고 믿고 싶어진다.


하루가 다르게 창밖이 짙은 초록으로 물들어간다.

나는 늘 마음이 조금 늦게 따라오는 것 같다. 자꾸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마음을 부지런히 끌어오다 보면, 어느새 다음 계절에 와있다.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이 한 해가 되고, 인생이 된다는 게 문득 아득하고 신기하다. 아마 나는 언제나 흐르는 시간을 따라잡으려 애쓸 것 같다.

밤을 걷고, 글을 적고, 그렇게 반박자 느리게 계절을 지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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