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함께, 오래도록

by 소혜


겨우내 하얀 강아지의 몸을 감싸고 있던 털을 깎아주었다. 복슬하게 자란 털이 너무 귀엽지만, 곧 날이 더워지면 곤란할 테니까. 보통 계절에 한 번씩 털을 다듬어 주는데, 올봄은 날이 천천히 익어가는 느낌이라 손이 조금 늦었다. 엄마는 일일 미용사가 되어 가위를 들었고, 나는 겁이 나서 괜히 투정을 부리는 강아지를 옆에서 달래며 꼬박 한 시간을 씨름했다.

한 올 한 올 잘려나가는 털 사이로 봄빛이 스며들었다.


가끔 털을 다듬어줄 때마다 우리가 무사히 함께 계절을 났다는 걸 깨닫는다. 작고 사랑스럽고 말랑한 이 아이와 앞으로 몇 번의 계절을 더 보낼 수 있을지 생각하면 금세 눈이 시큰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이 아이에게 사랑을 배웠다고 자부할 수 있다. 지금보다 훨씬 작았던 어린 시절부터 나와 다른 생명을 이해하고 말없이 마음을 포갰으니까. 이 아이는 사랑스러운 얼굴로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려 주었으니까.


애정 어린 눈빛과 온기만으로도 충만해지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이 아이는 나의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내가 어떤 사람이든 늘 똑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봐 주었을까. 내가 부모님께 받은 너무도 큰 사랑을 이 아이도 나에게 조금이나마 느꼈을까.


곧 녹음이 짙고 빛이 쏟아지는 계절이 온다. 뜨거운 햇빛을 좋아하지 않지만, 눅진한 계절이 다정히 기록되는 이유가 아직 내 곁에 있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다는 걸 알지만 되도록 오래오래 함께 계절을 나고 싶다. 계절을 함께 보내고 싶다는 말은 내가 생각하는 가장 단단한 애정 중 하나이다. 지금뿐만 아니라 우리가 함께할 그 너머의 일들을 생각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보낸 수많은 봄을 또 한 번 지나, 여름을 견디고 다시 겨울을 나면서, 그렇게 함께, 오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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