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한 늦봄의 단상

by 소혜


무르익은 오후에 세상은 옅은 살구빛을 띤다. 이는 아직 방 안의 형광등을 켜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글자가 읽히지 않을 만큼 어두워져야 비로소 불을 켜는 건 내 오랜 습관 중 하나이다. 그런데 오늘은 초저녁이 채 되기도 전에 방이 깜깜하더니 곧 세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일기예보에는 ’천둥번개를 동반한 국지성 폭풍우‘라고 적혀 있었다.


세상이 멸망하려나. 어렸을 때부터 천둥번개가 칠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세상이 이렇게 시시하게 멸망할 리 없는데도 말이다. 누군가 먼저 떠나야만 하는 것이 인생의 순리라면 차라리 다 같이 없어지는 게 덜 슬프지 않을까. 이렇게 또 바보 같은 생각을 하다 잠에서 깬 내 강아지를 얼른 안아주었다.


나처럼 자주 슬퍼지는 사람은 안아주고 싶은 것들이 많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세상의 끝을 자주 떠올리면서도, 끝나지 않을 다정함에 대해 더 오래 생각하려 애쓰는 사람. 이렇게 살아 있는 한, 무언가를 안아주고 싶은 마음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어쩌면 감당하지 못할까 두려워 두 팔을 뻗지 못하는 날들이 많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안고 싶은 존재가 없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 그땐 정말로 세상에서 제일 외롭고 슬픈 사람이 될 것만 같다.


야트막한 초저녁의 어둠 아래 떠오르는 생각들이 자꾸 꼬리를 물었다. 큰 소리에 놀라 몸을 떠는 하얀 강아지를 가만히 안고 있으니 물기 어린 감정이 마음 어딘가에 맺혔다. 역시 슬픔만큼 커다란 사랑의 산물은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드리워 있던 커튼을 활짝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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