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서리를 접는 마음

by 소혜


읽다 만 책들이 침대 옆에 겹겹이 놓여 있다. 책꽂이에 들어가지도, 내 눈에 읽히지도 못한 책들이 왠지 쓸쓸해 보여서 한 권 집어든다. 한 챕터도 채 끝나기 전에 접어둔 모서리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가끔 읽는 일이 쓰는 일보다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자세를 여러 번 고쳐 앉거나, 장소를 바꾸거나, 괜히 머리를 묶었다 풀었다 한다. 한 번 손에 잡은 책은 끝까지 읽고 싶은 욕심이 생겨서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는데 그렇다. 가끔 생각이 엉뚱한 곳으로 새거나 무거운 잠이 나를 끌어당기면, 반쯤 감긴 눈으로 한쪽 모서리를 살짝 접어 둔다. 그렇게 한동안 잊고 지내다 문득 떠올라 다시 펼쳐보는 날이 있다.


지난여름엔 그런 일들이 유독 많았다. 나만 알도록 조금 접어 놓은 책의 모서리 같은 일들. 희미하게나마 자국이 남아 오래 기억되었으면 했던 순간들. 어쩌면 그 기억들이 여름을 무사히 견디게 해 주었는지도 모른다. 여름을 입은 세상에는 소소한 이야기들이 자꾸만 생기나 보다.


이제 새벽 네시가 조금 넘으면 벌써 아침을 맞이하는 새소리가 들린다. 나는 그제야 짧은 밤을 아쉬워하며 옅은 불을 완전히 끄고 눈을 감는다. 나만큼 더위를 많이 타는 하얀 강아지와 선선한 산책을 하고 싶어서 가을을 애타게 기다리는 날들도 많아질 것이다. 어른 한걸음만큼 떨어진 곳에서 잠든 강아지를 보니, 그래도 문득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뭉클하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마음은 설레지만 조금 외롭기도 하니까.


여름이 한 권의 책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너무 덥고 지칠 땐 잠깐 모서리를 접어놓았다가 춥거나 외로운 날 펼쳐볼 수 있는 그런 책.

그래서 너무 춥지도 덥지도 않게, 늘 적당히 뭉근하고 따뜻하게 마음 어딘가 새겨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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