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찬 커피랑 오이 못 먹어? 유리컵에 맺힌 물방울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문득 생각이 났어. 누군가의 안부가 궁금해지는 순간이 이렇게 시시할 줄은 몰랐는데.
너는 겨울보다 여름을 좋아했던 것 같은데,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아. 다만 네가 추위를 많이 탔던 것, 샌드위치를 먹을 때마다 찡그린 표정으로 오이를 골라냈던 것은 생생하게 기억나. 왜일까?
기억은 별 일 아닌 것에서 피어올라 파도처럼 마음을 잠기게 할 때가 있어. 가끔 누군가와의 추억에 기꺼이 잠기고 싶은 날이 있지 않니? 나는 그래. 나는 우리가 서로에게 그 정도의 시간은 내어줄 수 있는 사이라고 생각해. 물론 아주 가끔 말이야.
안부는 누군가가 편안히 잘 지내고 있는지, 혹은 그렇지 아니한지에 대해 묻는 일인데, 내가 너에 대해 궁금한 게 딱 그만큼이라 다행이야. 지나치게 궁금하지도, 기억 속에서 완전히 죽어버리지도 않은, 네가 나에게 딱 그 정도의 사람이라서. 그러니 이렇게 한없이 말갛고도 축축한 이 계절에 너의 안부가 궁금한 게 그리 어색한 일은 아닐 거야.
마음은 늘 여진에 흔들린다는 말처럼, 아주 사소하고 뭉근한 기억들이 꽤 오래 남을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 편지는 꼭 부치기 위해서 쓰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아, 그리고 나는 여전히 찬 커피만 마시고 네 오이를 대신 먹던 그때처럼 뭐든 잘 먹어. 가끔 슬프지만 그럭저럭 잘 지내는 것 같아. 너도 조금만 슬프고 자주 행복을 느끼길 진심으로 바라.
곧 지겨운 장마가 오겠네. 겨울을 기다리기엔 너무나도 멀어서 나는 아직도 이 계절을 참 서투르게 보내. 그때 너를 조금만 더 따뜻하게 보냈다면 좋았을 텐데. 나는 뜨거운 여름에 겨울처럼 멀어진 우리가 가끔 아쉬웠어. 이미 다 지난 일이지만.
괜히 길어졌네. 이만 줄일게.
여름을 잘 보내고 겨울에도 많이 춥지 않기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