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사랑니가 나던 무렵, 나는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온 누군가로 인해 머리가 지끈거렸다. 겨울에 움을 튼 마음으로 사계절을 앓는 일이 애석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긴 추위를 뚫고 자라난 마음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한 자리를 차지했다. 어금니 안쪽에 생긴 사랑니를 혀끝으로 쓸어볼 때처럼 불편하고 묘한 감각이었다.
사랑니는 사랑을 시작할 무렵에 난다는 말이 있다. 사랑이 때로는 눈물이 찔끔 날만큼의 통증을 수반한다는 걸 알게 되기까지 나에게는 스무 해쯤의 시간이 필요했다. 하필 마음을 앓던 시기에 어금니 안쪽이 까끌거리기 시작했던 나는 그 말을 굳게 믿었다. 하지만 실제로 사랑니는 대략 열일곱에서 스물 다섯 즈음, 지혜가 생기기 시작할 때 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영어로는 wisdom tooth, 곧 ‘지혜의 이’다. 사랑니라는 말은 사랑을 시작할 무렵과 이가 나는 시기가 겹친 데서 비롯된, 낭만적이면서도 어딘가 쓸쓸한 이름이다.
문득 사랑과 지혜는 어떤 교집합이 있을지 궁금해졌다. 언뜻 보면 사랑은 뜨거운 감정에, 지혜는 차가운 이성에 가까운 듯하다. 하지만 둘은 상호보완적일 때 가장 온전하고 이상적인 상태가 될 수 있다. 지혜가 있으면 사랑이란 감정을 어떻게 다루고 언제 놓아야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표현해야 건강하게 지속할 수 있는지 알게 된다.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과 감정을 조절하며 지켜보는 인내, 상처를 주지 않으려는 선택은 지혜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또한 사랑을 하면서 배운 용서, 이별, 책임 같은 것들은 지혜를 길러준다. 결국 사랑은 지혜를 필요로 하고, 지혜는 사랑이라는 경험으로부터 나올 수 있다. 안목과 통찰은 용기 있게 사랑하고 부딪혀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지혜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 당연하고 어려운 사실을, 첫 사랑니를 앓고 몇 해가 지나 마지막 사랑니가 날 때쯤 깨달았다. 사랑은 불현듯 왔고, 지혜는 그 뒤를 느릿느릿 따라왔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첫 사랑니를 품은 청춘은 서툴고 뜨거운 게 당연하니까.
그러니 내 생각엔 지혜의 이보다는 사랑니가 조금 더 그 시기에 어울리는 이름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