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그러자고 약속한 것처럼

by 소혜


그해 가을에는 더 늦기 전에 꼭 한 번 마주하고 싶은 얼굴이 있었다. 내세울 것 없이 마음만 앞섰던 날들에 대한 후회이자 손을 떠나버린 일에 대한 미련이었다. 끝내 남겨둔 말들이 체한 듯 가슴에 걸려 속이 자주 울렁거렸다. 무표정으로 감정을 숨기던 낮이 있었고, 완성되지 못한 문장들 사이를 배회하던 밤이 있었다. 고통은 왜 성장과 불가분의 관계인 것일까? 이제야 너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말하기까지, 나의 아픔엔 너의 몫도 있다는 원망의 말을 적지 않게 되기까지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걸까?

이듬해 봄까지도 나는 스스로를 속이느라 바빴다. 벌써 눈이 다 녹고 진짜 봄이 왔다는 사람들의 말에도 불구하고 가슴 한켠이 차가웠다. 마치 처음부터 그러자고 약속한 것처럼, 오래도록 마음이 시렸다.






‘그해 가을은 그렇게 지나갔어.‘라고 말할 수 있는 또 다른 가을의 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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