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잘 있습니다

by 소혜


그날 부산 밤바다에는 도시의 불빛이 물결을 따라 자유롭게 흔들렸다. 해변 위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포말처럼 흩어지고 무수한 발자국들이 파도에 부딪혀 지워졌다. 바다를 보면 그리운 이의 안부를 물을 때처럼 마음 한 구석이 시큰거렸다.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힘차게 환대해 주는 그 깊고 너른 품 앞에서 쉬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던 여름밤이었다.


그때 나는 바다의 안부가 궁금하다는 핑계로 어느 오래된 약속을 떠올리고 있었다. 겨울을 좋아했지만 여름이 오면 바다를 보러 가자는 그의 말에 처음으로 여름까지 남은 날을 세어보던 기억이 난다. 함께 나누었던 말들이 야경처럼 밤을 수놓을 때면 마음이 한없이 부풀곤 했다. 여행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낯선 곳에서 그와 함께 먹고 마시고 걷는 일은 생각만 해도 근사했다.


하지만 삶은 마음속에 그려둔 지도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우리를 데려가곤 한다. 그해 여름 우리는 함께 바다를 보지 못했고 인연이 끝난 후에는 나의 일부가 유실된 듯 마음이 통째로 흔들렸다. 누군가의 부재로 인한 빈틈은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기 전까지 채워지지 않을 거라 믿기도 했다. 이별과의 기나긴 힘겨루기를 끝낸 뒤 내가 알게 된 점은 마음의 빈자리는 결국 스스로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 외로움은 억지로 밀어내기보다 나란히 걸어야 하는 감정이라는 것도. 나는 우리만의 세상 속에서 보지 못했던 풍경을,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그제야 여과 없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별을 지나오면 우리는 그전과 다른 사람이 된다. 내가 포기할 수 없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되고, 사랑은 슬픔을 키우는 일이라는 걸 깨닫고 주춤하기도 한다. 그 여름의 밤바다에서 나는 앞으로 무언가를 있는 힘껏 사랑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만 혼자서도 바다를 볼 수 있고, 보내주고 나서야 비로소 통과되는 시간을 알고, 내 몫의 외로움을 담담히 껴안는 사람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파도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묵묵히 밀려왔다 다시 물러가기를 거듭했다. 나는 그 너른 숨결에 한참 동안 기대어 마음의 잔해를 흘려보냈다. 반질반질한 조개껍질들이 어느 시절의 마음처럼 모래사장에 반짝이고 있었다.







우리는 안 괜찮으면서 괜찮다고 말합니다.
당신은 혼자를 핑계로 혼자만이 늘릴 수 있는 힘에 대해 모른 척합니다. 누구든 한쪽으로 치우칠 수 있겠지만 당신만은, 방에서 나와 더 절망하기를 바랍니다.

오래 전하지 못한 안부를 전합니다.
바다는 잘 있습니다.


이병률, 『바다는 잘 있습니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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