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을 선택하게 되는 이유
보스가 모든 걸 정한다.
준비한 내용을 듣기도 전에 이미 결론이 정해져 있다.
보고는 지시를 받기 위한 형식이고, 질문은 분위기를 망치는 일처럼 여겨진다.
나는 침묵을 택했다.
나약해서가 아니라, 이곳에서는 그게 유일한 생존 방식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결정도 빠르고, 방향도 자주 바뀐다.
하지만 그 속도가 누군가의 독단에서 시작되고 끝날 때,
말은 사라지고 추측, 눈치, 망설임만 남는다.
“말해봤자 어차피 안 받아들여질 텐데.”, “괜히 튀어서 불이익 받느니, 조용히 넘어가자.”
이건 내 감정이 아니라, 권한 없는 사람의 자연스러운 자기 방어 반응이다.
말하지 않고 넘긴 날,
그 자리에서는 조용히 있었지만
퇴근길에는 가만히 있던 내가 가장 불편해진다.
목에 뭐가 걸린 듯한 답답함
준비한 말을 삼킨 내가 나를 설득해야 하는 피로감
결국 침묵은 당장의 평화를 주는대신, 나와 나 사이의 불화를 키운다.
보스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 태도
속도 앞에 ‘질문’이 불필요해지는 문화
이런 환경에선 말하는 사람보다, ‘조용히 따르는 사람’이 오래 버틴다.
말하는 사람이 문제아가 되는 조직에서는, 결국 모두가 문제를 숨기게 된다.
처음엔 “지켜보자”였고,
다음엔 “이번만 넘기자”였고,
지금은 “이제 말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나”로 바뀐다.
그게 무기력의 시작이다.
말하지 않던 내가 아니라, 말할 수 없었던 내가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한 것.
이견을 제시하지 않더라도,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말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저는 조금 다른 시각을 갖고 있어서요.”
“이 방향이 대표님의 기준에 더 부합하는지도 검토해볼까요?”
“이건 걱정이 돼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결과를 바꾸기 위한 말이 아니라, 내 감정을 지우지 않기 위한 말.
침묵은 전략일 수 있다.
하지만 계속 침묵하면, 결국 나도 이 구조처럼 변해버린다.
말을 꺼낸다고 구조가 바뀌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나'라는 존재는 이 안에서 점점 흐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