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당한 금주선언

by 지그시

지금까지 술을 마셔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한다면, 그건 이상한 일일까요? 저는 실제로 지금까지 술을 마셔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주변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저는 자연스럽게 술을 입에 대지 않는 사람이 됐습니다.

술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았던 게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술을 우리 가족에게 부정적인 영향만 가져오는 존재였기 때문에 술을 먹고 들어오는 아빠라 보면 볼수록 술에 대한 이미지는 나날이 안 좋아졌습니다. 두 번째 원인은 게스트 하우스를 하던 시절 술을 먹고 토를 하는 손님들의 뒤처리를 하던 기억이나, 술집 거리 사이에 있는 탓에 저희 집 계단에 토를 하고 가던 수많은 취객들, 밤이면 밤마다 술을 먹고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며 싸우는 주변 술집 손님들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술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사실 그런 시도조차 해볼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쩌면 술이 무서운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중독’은 무서운 일입니다. 한번 중독되면 끊기는 어려워지고, 그러는 동안 본인을 포함한 주변의 모든 것들을 병들게 합니다. 무엇보다 점점 일상생활을 제대로 이어나갈 수 없게 하며 종국에는 스스로의 건강까지 앗아가 버리죠. 가장 큰 문제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끊지 못한다는 겁니다.

마약은 중독되면 대부분 평생 끊을 수 없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한 전문가가 마약 중독자들이 마약을 끊지 못하는 건 다시 하고 싶다는 충동 때문이 아니라, 마약을 하지 않는 동안 찾아오는 극심한 통증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통증을 참지 못해 다시 마약에 손을 대게 되는 거죠. 아빠를 보며 그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술을 먹지 않는 아빠는 늘 뭔가를 견디고 참는 사람 같았으니까요. 그렇게 아픔과 고통을 참다 참다 술을 마시는 일상이 반복됐고, 지금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뭐가 그렇게 고통스러운 것일까. 아빠는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사람처럼 살아갑니다. 엄마가 왜 마음이 병들었는지, 언니가 어째서 행복하지 않은 결혼생활을 하는지, 왜 내가 연애와 결혼을 꿈꾸지 않고 술은 입에도 대지 않는지 아빠는 모를 겁니다. 스스로가 가장 힘들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각할 여유조차 없을 겁니다. 그 모든 사실을 알면서 아빠를 이해하고 품고자 했습니다. 그 과정이 험난할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역시 매일 매일이 시험과 시련의 연속입니다.

사람은 인생을 살아가며 어떤 방식으로든 의지할 대상을 찾습니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중 좋은 관계에서 서로 좋은 영향력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의지하는 사람들도 있고, 신앙으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태어난 환경 때문에, 주변 사람들로 인해 의지할 만한 대상을 제대로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많은 경우 술을 의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사는 지역이 그런 건지, 어느 동네나 그런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제 동네를 다니다 보면 누가 봐도 하루 종일 술에 취해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자주 봅니다. 눈이 풀려서 초점이 없고, 비틀거리며 누가 봐도 혈색이 까무잡잡해 건강이 안 좋아 보이는 사람들. 이웃 어르신들의 대화에서 그런 사람이 길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적도 있습니다.

저는 어떤 경우에도 술에는 의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건 술을 등한시하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저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어서입니다. 저는 마음이 강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내뱉은 한 마디, 행동 하나가 모두 마음에 박혀 오랫동안 괴로워하는 겁쟁이입니다. 그래서 저도 술을 의지하게 될까 봐 두렵습니다. 그래서 먹지 않기로 한 겁니다. 아무에게도 선언을 한 적은 없지만, 그럼에도 이런 결심이 아무 의미가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 약한 마음을 붙들어주면서 다시 마음을 다잡을 수 있게 해줍니다.

전 술이 주는 즐거움은 평생 알지 못할 겁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 대신 술을 안 먹고도 재밌게 웃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고, 이 세상에는 다른 즐거움도 많다는 사실을 소중한 사람들로부터 배웠으니까요. 그래서 조금은 안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