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단 한가지 소원

by 지그시

만약에 이랬다면, 만약에 저랬다면. 만약 이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면, 저 사람을 만났다면. 만약 여기서 이런 선택을 했다면. 살면서 이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과거를 후회하는 일은 사실 의미가 없습니다. 의미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저는 왜 계속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걸까요? 만약 엄마가 아빠를 만나지 않았다면. 만약 아빠가 알코올 중독자가 아니었다면. 그저 의미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선택 하나로 인해 지금의 현실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잘 기억도 나지 않는 그때의 나 자신은 분명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어서 그런 선택을 했던 거고, 그 선택을 한 건 과거였다고 해도 분명 다름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으니까요. 이 사실을 저에게 알려준 건 바로 엄마였습니다.

엄마는 대학을 다니던 시절 복학을 했던 아빠와 처음 만났습니다. 당시 엄마는 가족의 반대에도 홀로 공부를 해서 대학에 입학을 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학교 공부 외에 다른 것에 시선을 둘 여유가 없었지만 아빠는 엄마에게 한결같이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아빠의 마음을 받아들이게 됐죠. 엄마는 대학에서 공부에 재미를 붙이고 흥미를 느껴서 교수님의 제안도 받아 원래는 대학원까지 진학할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빠와 만나면서 공부보다 아빠와 만나는 데 시간을 보내게 됐고, 그렇게 점차 대학원 진학은 멀어지면서 대학을 졸업하고 아빠와 결혼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언니가 태어났습니다. 엄마는 언젠가 저에게 이때의 선택이 후회된다고 했던 적이 있습니다. 아빠와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 대학원에 진학해 교수가 됐을지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엄마의 지금 모습과는 전혀 다른 미래였죠. 아빠의 아내가 된 후 엄마는 스스로가 선택한 직업을 가지는 일 없이 그저 한 사람의 아내이자 아이들의 엄마라는 이름만으로 가족을 돌보는 데 힘 쎴습니다. 열악한 경제적 형편과 곁에 거의 있지 않고 술을 마시는 남편의 가까이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늘 싸우고 버텼죠. 저는 그런 엄마를 얘기를 들으며 나와 언니가 이 세상에 없었더라도 엄마가 대학원에 진학해 교수가 돼서 문제가 없는 평범한 남자와 결혼해 스스로의 삶을 주체적으로 꾸몄다면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이야기의 끝에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후회가 되는 건 사실이지만, 그 선택을 한 게 그 당시 나라는 건 변함이 없으니까 억울하지는 않아. 엄마가 그때 세상 물정을 몰라서 남자 보는 눈이 없던 것도 사실이고, 그때 아빠를 좋아했던 것도 사실이니까. 단지 너희 아빠가 어떤 가족 안에서 어떻게 자랐는지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는 게 문제였고, 술을 무섭게 먹는 게 이렇게 평생 동안 이어질 줄 꿈에도 몰랐지.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엄마가 한 선택인 건 분명하니까 그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해. 너희 아빠가 나쁜 사람은 아니고, 미안해한다는 것도 알고. 그러니까 못난 모습 보고 더 사랑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미워하지는 않고, 내가 죽을 때까지는 매일 지지고 볶더라도 너희 아빠랑 같이 살기 위해 노력할 거야. 그리고 그 선택으로 희생한 것도 많지만, 너나 언니라는 선물도 받았잖아. 지금 내 옆에 너희들이 없다는 건 상상도 안 되니까. 그러니까 너희도 과거에 한 선택에 연연하지 말고 앞으로 할 선택을 더 고민하면 좋겠어. 엄마는 이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으니까 너한테는 일찍 알려주는 거야.”

엄마는 그 말처럼 지금도 아빠의 옆에서 살고 있습니다. 저에게 단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우리 가족 모두가 자신의 과거를 용서하고, 받아들이고 이제 앞을 바라봤으면 좋겠습니다. 매일 새로운 일이 생기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기회가 찾아옵니다. 단지, 우리들이 그 새로운 것들을 놓치고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매일 스스로를 동정하고 불쌍해하며 술을 마시는 아빠의 시선은 늘 과거의 자신에게 향해 있습니다. 언니는 과거의 자신을 여전히 품지 못하고, 상처받은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저도 아빠로 인해 오랜 기간 동안 입은 상처를 아직 다 보듬지 못해 앞으로 나아가기가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우리 가족 모두가 과거의 서로를 용서하고, 상처받은 자신을 제대로 안아주며 이제 함께 미래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저의 단 한가지 소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