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들기보다 천천히 걸어가 보고자
억세게 내리는 비를
보고 있으면
우산을 펴는 것조차 겁이 났다.
땅에 부딪쳐
부서지는 물방울들이
너무나 선명했고
눈 앞에 보이는 세상은
점점 잠겨갔다.
그러다 예고 없이
비가 멈췄다.
어느새 바닥에 생긴 물웅덩이에
보지 못했던 세상이
조각처럼 고여 있었다.
아직 개지 않은 하늘에서는
언제든 다시 비가 떨어질 것만 같았고
예고없이 그쳤듯이
예고없이 다시 쏟아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발을 내딛었다.
비가 아무리 내려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고
비가 그친 뒤의 세상은
한 겹의 껍질을 벗은 듯
저 구석에 분명한 빛을
머금고 있었으니까.
우산을 펴자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생각만큼
옷은 젖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