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그시 Jul 10. 2024

내가 대안학교에 가지 않았다면

"내가 대안학교에 가지 않았다면 지금 어떤 모습일까?" 

요즘 이런 생각에 종종 잠깁니다. 가족과 부대끼는 시간이 늘어나니 그런 생각이 더 자주 드는 모양입니다. 그만큼 대안학교에 갔던 건 제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일이었습니다.

전 어렸을 때부터 친구를 잘 사귀지 못했습니다. 목소리도 작았고 그래서 흔히 말하는 존재감이 없는 아이였죠. 지금 생각해 보면 저 스스로 존재감이 없다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이 어린 저에게는 두렵기만 한 일이었고, 그래서 오히려 혼자가 편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저를 보고 엄마는 절 대안학교에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언니를 이미 대안 고등학교에 보내본 경험이 있는 엄마는 특별히 중고등학교 과정이 이어져 있는 대안학교를 찾아 절 입학시켰습니다. 대안학교에 간 건 결론적으로 말하면 제 인생에 긍정적인 터닝 포인트였지만, 사실 그렇게 되기까지는 매우 험난한 과정이 있었습니다. 

저는 늦둥이로 태어나 여러모로 자립심도 부족했고, 엄마가 맞벌이를 해 늦게 퇴근을 하는 일이 잦아서 초등학교 시절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엄마와 제대로 된 분리가 되지 않아 내면이 또래에 비해 미성숙한 채로 기숙사형 대안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당연히 그곳에서도 친구 관계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해에 입학한 중1은 여자 다섯, 남자 다섯, 총 10명이었습니다. 여자들 사이에서 홀수는 문제적인 숫자가 되기 쉽다던데, 실제로 그 시절의 저에게도 그랬습니다.

입학하자마자 제가 싫다며 저를 차별하는 여자애가 있었습니다. 그때 어린 마음에 자존감이 밑바닥까지 떨어질 정도로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애가 다른 여자애와 싸우더니 갑자기 저를 자기편인 것처럼 데려오면서 편을 가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영문을 모른 채 끌려다녔고, 그러다 그 여자애가 갑자기 학교를 그만둔 이후 제가 그 여자애 편이라는 인식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다른 여자애들과 어울리는 게 더 어려워졌습니다. 그렇게 저는 자진해서 혼자 다니게 되었습니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그 여자애들이 먼저 다가오려고 했지만 저는 자존감이 너무 낮아진 상태라 곁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을 본 언니들은 여자애들이 절 따돌리는 거라고 오해하기에 이르렀고, 억울한 여자애들과 자발적 외톨이인 제 사이는 이후 가까워지는 일 없이 여자애들이 중학교만 마치고 학교를 나가면서 끝이 났습니다.

어려움은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학교에는 중학교 2학년부터 정해진 과제와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집을 보내지 않는 제도가 있었는데,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던 저는 매번 집에 가지 못했고 심지어 2달간 집에 가지 못한 적도 수두룩했습니다. 그때가 학교를 다니던 중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엄마에게 매일 공용전화로 전화해 우는 게 일상이었을 정도로요. 

그러다 교장선생님께서 저의 사정을 알고 집에 가는 과제와 시험을 그 당시 저에게 맞게 바꿔 주시게 됐습니다. 그 시점부터 집에 매번 갈 수 있게 됐고, 제 마음은 천천히 평온해졌습니다. 조금씩 성적도 좋아지게 됐습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부터 언니들과도 친해져서 성격도 밝아졌고 새로 들어온 친구들과도 이전보다 쉽게 친해졌습니다.

기숙사형 대안학교다 보니 자연스럽게 선생님과 많은 시간을 붙어 있게 됩니다. 그러면서 선생님들이 제가 가진 문제를 알아보게 됐고, 여러 번 상담을 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그리고 언니들과 오빠들 덕분에 잃었던 자존감이 많이 회복됐습니다. 외모에 자신이 없던 저는 늘 움츠러져 있었는데 그 당시 흔히 우리 학교의 ‘인싸’라고 불릴만한 언니가 늘 제 옆에서 다른 오빠들이나 동생들과 친해질 수 있게 적극적으로 도와주며 자신감을 불어넣어 줬습니다. 그리고 대안학교에서 만난 많은 선생님들이 저 스스로는 발견할 수 없었던 저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게 도와줬습니다.

과거에 대안학교는 과거에는 일반교육에 적응하지 못한 아이들이 가는 학교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제 경우에는 그랬던 것 같습니다. 태생적으로, 그리고 환경적으로 내향적이고 자존감이 낮았던 제가 일반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갔다면 제대로 된 교육과정을 마치지 못했을 것이 어쩌면 당연합니다. 대안학교는 그 특성상 교풍이 자유롭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관계를 쌓는 법과 그 가치를 공동체 속에서 배웁니다. 그렇게 마음의 힘을 키워가는 법을 배웠습니다. 제 주변 사람들의 존재를 제대로 인식하고 감사할 수 있게 됐고, 세상이 넓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제 현실에 매몰되지 않게 됐습니다. 물론 대안학교 중에는 교풍이 너무 자유로워 지켜야 할 교칙이 거의 없는 곳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다녔던 곳은 자유로운 교육방침 아래서도 올바른 이념으로 교칙을 준수하도록 교육해 스스로 올바른 기준을 세우는 법을 함께 가르쳤습니다.

저는 교육이란 영역에 있어서 스스로의 가치를 조금의 힘으로도 발견할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스스로의 가치를 아주 오랜 시간을 거쳐 주변의 도움을 빌려서야만 발견할 수 있는 사람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 후자의 사람이었죠. 그렇기 때문에 저를 깊고 오래 지켜보고 도와준 수많은 사람들 덕에 지금의 제가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아 여기까지 온 저는 누군가 필요로 하는 곳에서 제가 받은 도움을 돌려주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아빠에게 제 존재가 도움이 됐으면 하는 소망이 가슴 한 편에 늘 박혀 있습니다. 며칠 동안 술을 먹고 휘청거리며 집에 들어온 아빠를 보고도 웃을 수 있는 건 제 곁을 지나간 많은 사람들 덕분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힘내야 하고, 그렇기에 더 힘낼 수 있습니다.  

이전 05화 부재중인 기억에 감사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