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렁이의 핑크빛 알과 사라진 토끼가 남긴 것들
오래된 집에 빨강 지붕을 얹었다.
그 아래엔 초록색 대문이 자리했다.
양쪽에는 사철나무가 담을 이루듯 자라나,
계절이 바뀌어도 변치 않는 초록으로
농장의 시간을 지키고 있었다.
문을 열면 작은 호수가 보인다.
영산홍이 그 둘레를 감싸며
봄마다 붉은 불꽃처럼 피어오른다.
호수는 사람이 만들었지만
그 안의 생명은
누구도 꾸며낼 수 없는 진짜였다.
바위 한쪽엔 우렁이가 알을 낳았다.
핑크빛 알들이 수줍게 매달려 있었다.
그 작은 알들이
이 넓은 공간에서 생명이 시작된다는 걸
조용히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풀섬 쪽에 토끼 두 마리를 풀어놓았다.
그곳엔 네이크로바 유칼립투스가 자라나
잔디처럼 부드러운 바닥을 만들었고,
밤이면 작은 조명이 켜져
그 공간은 동화처럼 변했다.
토끼들은 그 불빛 아래를 뛰어다녔다.
조용히, 귀엽게, 아무 말 없이.
그 풍경이 오래갈 줄 알았다.
하지만 토끼는 하나씩 사라졌다.
어디로 갔을까.
무엇을 따라갔을까.
남은 건 한 마리였다.
풀숲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바람은 단서를 남기지 않았다.
나는 괜히 더 조용히 걸었다.
무언가 아직 그 자리에 있는 듯
마음이 먼저 멈췄다.
농장엔 참 많은 생명들이 자란다.
그날, 딱따구리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소리를 따라가
처음으로 가까이서 딱따구리를 보았다.
작은 몸, 여린 부리.
하지만 나무를 쪼는 소리는 단단했다.
연약해 보여도
그 부리는 흔들림이 없었다.
나는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그것을 바라보았다.
생명은 모두 다 다르고
모두 다 신비롭다.
우리는 존중하지 않으면
그 신비를 영영 놓치고 만다.
오늘은 네이크로바 유칼립투스 아래서
하얗게 피어난 작은 꽃으로
아이와 함께 꽃반지를 만들었다.
내 손에도, 아이의 손에도
하나씩 끼워줬다.
그 작고 순한 반지가
한순간 우리 둘을 같은 시간으로 묶어주었다.
농장은 지금,
작은 생명들의 우주다.
모든 생명은
말없이 피어나고
말없이 사라진다.
그래서 더욱 귀하고,
더욱 지켜야 한다.
― 디바인힐러